이층버스를 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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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민 제주한라대교수/논설위원

지난 일요일, 이글을 쓰기 위해 1만2000원을 내고 제주황금버스를 탔다. 예상보다 많은 아홉 명이 앉아 있었다. 일곱 명으로 이루어진 중국인 한 팀, 그리고 서양인 한 팀이었다. 그것도 잠시, 제주도립미술관에서 모두 내리고, 두 명이 새로 탔다.

그 뒤 약 한 시간은 나를 포함해 그렇게 세 명이 버스 승객의 전부였다. 구제주 시내를 통과하면서 몇 명이 더 타고 내렸지만, 승객의 수는 평균적으로 다섯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는 정도였다. 어느 때든 32개 좌석의 삼분의 일을 넘기지 못했다. 날씨 맑은 일요일 오후였으니, 손님이 없는 시간대는 아닐 터다. 운전기사와 한국어를 잘 하는 중국인 승무원은 친절했지만, 그 친절을 써먹을 기회가 별로 없는 듯 했다.

정류장 고유번호에 맞는 숫자를 매번 손으로 눌러야 하는 차내 안내 방송의 중국어, 영어, 한국어 녹음상태는 나쁘진 않았다. 다만 헤드폰을 끼고 듣는 사람은 역시 나밖에 없었다.

대부분 의자를 젖힌 후 눈을 감고 휴식을 취하거나, 친구 또는 가족들과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단체 관광객도 아니면서 렌트카도 빌리지 않은 개별 여행객 중 극히 일부가 황금버스를 대체 교통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으로 보였다.

묻고 싶다. 제주는 어떤 것들이 가장 아름다운가? 어머니 품과 같은 한라산, 파도치는 파란 바다 그리고 정말 도시생활에 찌든 폐에 새로운 활력을 줄 것만 같은 맑은 공기, 이 셋이다.

황금버스에 몇 명이나 타는지, 연간 대략 몇 억의 적자가 나는지, 그런 영업실적은 관련 자료를 보면 모두 알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연간 4~5억의 적자보다 더 큰 문제는, 제주를 찾는 국내·외 여행객이 황금버스를 타고서는 제주의 이 가장 아름다운 것들을 누릴 수 없다는 점이다.

이층이 개방된 형태의 이층버스를 도입하자! 매연과 미세먼지로 가득한 런던, 홍콩, 상하이에도 뚜껑 없는 이층버스가 다닌다. 여행객들은 좋다고 그 미세먼지를 마시며 뚜껑 없는 이층에 앉아 동영상을 찍고, 사진을 찍는다. 일층보다 최소 2미터는 높은 이층에 앉아 손을 뻗으면 주위의 사물이 닿을 것만 같다. 창문과 벽체로 가로막혀 있는 일반버스와는 그 실감의 차원이 다르다.

잠시 눈을 감고 깊은 쉼호흡을 한다면, 피톤치드가 나온다는 편백나무가 가득한 1131번도로 ‘숲터널’ 보다 더 좋은 곳이 이 세상에 어디 있단 말인가? 때마침 석양 노을이라도 질 때, 찰랑이는 파도소리와 습습한 바닷바람을 뺨에 맞으며 달리기에 애월해안도로보다 더 좋은 곳이 이 세상에 어디 있단 말인가? 지금과 같이 창문도 열리지 않는, 시외버스보다 더 폐쇄된 형태의 버스로는 그 어느 것도 가능하지 않다. 중국인들은 한 번 오면 꼭 찍고 간다는 성산 일출봉에 갈 때도, 가능하다면 이층버스에 앉아 바람을 쐬면서, 때로는 도민들에게 손도 흔들며 가고 싶어 할 것이다.

최근 언론보도를 보니, 시티투어버스와 황금버스를 하나로 통합하고, 노선을 조정한다고 한다. 방향을 잘못 짚은 것 같다. 효율적인 운영과 노선조정도 좋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제주도를 좀 더 느낄 수 있는, 재미있는 운송수단이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묻자. 프랑스 파리의 에펠탑을 버스 안에서 창 밖으로 지나쳐가며 보고 싶은가, 가서 한 번 만져보고 싶은가?

첨언(添言)-중국인들이 황금색을 좋아한다고 해서 황금버스를 도입했다는 글도 본 듯하다. 중국인들은 황금을 좋아하지, 황금색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중국인들, 바보 아니다.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색깔이 있다면, 그것은 붉은색이다. 그러나 ‘그냥 붉은색’이라면, 오히려 ‘세련된 파란색’이나 ‘멋진 초록색’을 좋아한다. 해외여행 다니는 중국인이라면, 이제 눈도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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