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던진 돌 하나가 우주의 균형을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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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세훈. PRgency 컴일공일 이사·전 중앙일보 기자

지난달 29일과 30일 서귀포시 대정읍 하모체육공원에서 마농박람회가 열렸습니다. 푹푹 찌는 폭염에 진행 측이나 부스를 지키는 사람들, 방문객들 모두 엄청난 인내를 필요로 했습니다. 불쾌지수가 높은 상황에서도 별다른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마 인내지수나 감사지수가 높았던 까닭이지 않나 싶습니다.

하지만 제가 보는 곳에서 사고가 있었습니다. 잔치국수와 전, 돔베고기 등으로 식사를 할 수 있도록 마련한 곳으로 가던 70대의 할머니가 넘어진 것입니다. 이곳은 평상시 주차장이기 때문에 자동차가 밀리지 않게 막아주는 카 스토퍼가 있었는데, 거기에 걸린 것입니다. 다행히 할머니는 넘어지자마자 털고 일어나셨습니다. 일행이 다친 데는 없냐고 묻자 괜찮다고 하셨죠. 세게 넘어졌다면 얼굴 정면으로 엎어졌기 때문에 얼굴이 심하게 다칠 위험한 상황이었는데, 발에 살짝 걸렸거나, 조심스럽게 걸었기 때문에 충격이 크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아픈 데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노인은 그렇습니다.

저는 이 상황을 보고 어머니를 떠올렸습니다. 지난해 여름 집에서 움직이다가 옆으로 살짝 넘어졌는데도 어깨뼈가 부서져 병원에서 2달 넘게 고생하셨던 것입니다. 삼복 더위에 병원에서 깁스를 하고 생활한다는 것은 정말 못할 일입니다. 게다가 1년 뒤에는 박은 철심을 뽑아내는 수술을 해야 합니다. 어머니는 병원 신세를 지고 고생하느니, 그냥 철심을 품고 조심하며 살기로 결정하셨습니다.

노인들은 뼈가 약하고 균형감각이 떨어지기 때문에 조금만 넘어져도 큰 부상을 입기 쉽습니다. 겨울철이 더욱 위험하지만 여름이라고 해서 안전한 건 아닙니다. 특히 행사장에서는 안전이 최우선입니다. 안전은 건강한 사람 기준이 아니라 가장 약한 사람을 기준으로 해야 합니다.

위 사고는 햇빛이 환한 6시경에 일어났습니다. 카 스토퍼를 제거하지는 못하더라도 경사지게 만들어서 걸리지 않게 했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이때 경사는 매우 완만하게 해야 하겠지요.

사람들은 노인의 입장이 돼보지 않으면 노인의 고통을 알기 어렵습니다. 특히 대가족 제도가 무너진 현대 사회는 더욱 그렇습니다. 그렇다고 교육을 통해 노인의 삶을 적극적으로 생각하게 하거나 경험해볼 기회를 갖지도 못합니다. 모두 그 나이가 되고 몸이 불편해져서야 '아, 그때 그래서 우리 할아버지가 그렇게 행동하셨구나' 하고 깨닫게 됩니다. 노인 안전의 문제는 고령화가 급박하게 진행되는 우리 사회가 신경써야 할 숙제입니다.

제주는 다른 곳에 비해 행사, 축제 등이 많습니다. 행사를 치르면서 터득한 안전 노하우가 실행되고 전수된다면, 그래서 제주가 축제 안전의 대명사가 된다면, 제주는 안전이라는 가치만으로도 관광객과 행사 관계자들을 불러모을 수 있을 것입니다. 안전에 관한 한 작은 차이가 큰 결과를 낳습니다. 골절로 부상을 당해서 수술을 하느냐 마느냐의 큰 차이가 발생합니다. 심지어 죽고살고의 차이도 흔합니다.

시인 정현종은 한 산문집에서 “숲에서 나는 돌 하나를 던진 적이 있다…돌이 떨어지는 소리를 듣는 순간, 나는 지구 무게만한 어떤 느낌이 마치 지진처럼 내 속으로 지나가는 걸 느꼈다…내가 던진 돌 하나가 우주의 균형을 바꾼다!”고 썼습니다.

축제에서 신경 쓴 작은 실천 하나가 우리 어머니의 어깨 골절을 막고, 푹푹 찌는 더위에 수술을 하지 않아도 되며, 2개월 입원 동안, 땀으로 끈적해진 몸을 고통스런 방법으로 샤워해야 하는 어려움에서 탈출시켜 줍니다. 복 더위에 문병 가는 사람들의 괴로움도 막아줍니다. 문병 갔을 때의 어색함은 카 스토퍼의 높이보다 높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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