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변화 이겨내고, 제주 발전의 고삐 늦춰선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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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정일 전 이사장, 한국 현대사 격동기 속 국회의원...제주국제자유도시 조성에 핵심축 역할
▲ 1978년 36세에 국회의원에 당성된 후 3선 의원을 지낸 변정일 전 JDC이사장이 도내 한 호텔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세상은 빠르게 변한다. 그 변화에 적응하고 변화를 극복해야 한다. 제주도가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


3선 국회의원이자 4년 동안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를 이끈 변정일 전 JDC 이사장(74). 제주 정치사와 제주국제자유도시 개발에 하나의 큰 축을 담당했던 그는 국내·외적인 변화를 이겨내야 하고, 제주 발전의 고삐를 늦춰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변 전 이사장은 1978년 12월 36세의 나이로 10대 국회의원에 당선됐고, 1992년부터 2000년까지 14대·15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그가 초선의원을 지낸 1979년 4월부터 1980년 10월까지 약 1년 6개월은 그야말로 한국 현대사의 격변기였다.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 12월 12일 신군부세력 군사반란사건, 1980년 5월 18일 광주민주항쟁 등이 이어졌다.


당시 공화당 소속 초선 의원이었던 그는 젊은 소장파 의원들과 함께 당의 쇄신과 변화를 촉구하는 정풍운동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그는 10년 동안의 국회의원 활동에서의 가장 큰 보람을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에서 찾았다.


그는 1978년 국회의원에 첫 출사표를 던지면서 제주4·3에 대한 진상규명과 제주도민의 명예회복을 약속했고, 15대 국회 마지막 5개월을 남긴 1999년 12월 제주4·3특별법을 제정했다. 그는 제주4·3에 대한 도민과의 약속을 지키고 국회를 떠났다.


또한 개방화 물결 속에서 제주 농산물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고, 제주대학교 종합대학화, 서귀포시 승격, 2002년 월드컵 유치 등을 주도했다.


국회를 마무리한 그는 제주국제자유도시 개발에 눈을 돌렸다. 2009년 5월 JDC 이사장으로 취임한 그는 6대 핵심프로젝트 추진에 총력을 쏟았다. 그가 가장 역점을 둔 사업은 제주영어교육도시 조성이었다.


그 첫 번째 결실이 2011년 9월 개교한 영국의 ‘NLCS(North London Collegiate School) 제주’다. 이어 2012년 10월 캐나다의 브랜섬홀 아시아가 개교했고, 2012년 11월에는 미국의 세인트 존스베리 아카데미와 본계약을 체결했다.


그는 영어교육도시의 성공은 산남지역의 인구유입을 이끌었고 녹지그룹과 람정 등 대규모 외자 유치의 토대가 됐다고 평가했다. 그는 앞으로 제주도 전체가 아시아지역의 대표적인 국제교육도시로 발전하길 바라고 있다.


그는 “선조들의 지혜가 녹아있는 제주의 전통과 고유의 가치, 아름다운 자연 환경을 철저히 보호 유지하면서도 국제적인 변화에 적응해 앞서 나가야 한다”며 “모처럼 찾아온 제주 발전의 기회를 놓쳐서는 안된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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