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동에 보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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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동철 사회부장대우

제주사람들만 아는 은어 중 ‘탑동에 보말’이 있다. 지천에 널려 있어서 흔한 것을 빗댄 말이다. 탑동이 매립되기 전 해안에는 말 그대로 보말(고둥)이 널려 있었다. 놀거리가 마땅하지 않았던 시절, 탑동에 가면 보말을 따는 재미가 쏠쏠했다고 한다.

그런데 요즘 일부 마을어장에선 보말을 땄다간 날벼락을 맞을 각오를 해야 한다. 갯바위에서 돌을 들추며 보말을 따는 관광객들을 향해 해녀들이 ‘삐익 삐익~’ 호루라기를 불고 있어서다. 봉변을 당한 관광객들은 마치 죄인이나 도둑놈 취급을 받았다고 한다. 어린 자녀들도 지레 겁을 먹으면서 제주에 대한 환상이 깨졌다고 한다.

도민들도 예외가 아니다. 취미삼아 톳을 따러 갔다가 톳은 물론 호미까지 빼앗기는 일도 있었다.

필자도 당해봐서 사정을 안다. 조용한 바닷가에서 호루라기 소리는 연병장에서 얼차려를 받을 때 났던 것처럼 귓가를 때렸다. 군대에선 호루라기를 한 번 불면 한 바퀴 더 굴러야 했다. 처음엔 뭔 일이 터졌나 싶었다. 관광객들은 큰 잘못이나 한 것처럼 허둥지둥 바닷가를 빠져나왔다.

이런 갈등을 막고자 제주특별자치도는 2009년부터 마을어장 일부를 개방했다.

현재 101곳의 어촌계 마을어장 중 제주시 34곳, 서귀포시 11곳 등 모두 45곳이 개방됐다. 대상과 수량, 시기는 제각각이지만 맨손과 호미로 보말·게·거북손·군소는 물론 소라와 오분자기, 성게, 문어 등을 1㎏ 정도 채취하도록 허용하고 있다.

도는 개방한 마을어장 1곳당 3000만원의 인센티브를 지원, 안내표지판과 파고라 쉼터 등을 설치해줬다. 도홈페이지에는 마을어장 개방 현황과 현장 위치도를 올려놓고 홍보하고 있다.

전형적인 탁상행정의 표본이다. 현실과 달라도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일부 어촌계는 “누가, 언제 마을어장을 개방했느냐, 누구 맘대로 소라를 따도 되느냐”며 따지고 있다. 또 다른 어촌계는 현재 바닷가에 천막을 치고 감시를 하고 있다.

이곳에선 보말을 땄다간 곤욕을 치를 각오부터 해야 한다. 해녀들은 소라 산란기이고, 금채기라며 바닷가 출입조차 허용하지 않고 있다.

보말을 잡았던 탑동의 추억마저 막고 있는 셈이다. 도민은 물론 관광객들이 동경하는 제주바다에 대한 이미지가 흐려지고 있다.

6·25전쟁 피난 시절 굶주림에 끼니때마다 게를 삶아 먹었고, 서귀포 앞바다에서 게를 너무 많이 잡아먹어서, 그래서 미안해서 게 그림을 자주 그렸다는 고(故) 이중섭 화백은 작금의 현실을 알기나 할까.

그런데 해녀들의 입장도 고려해야 한다. 주말과 휴일에 일부 도민들이 썰물 때에 맞춰 마을어장에 들어와 소라를 훔쳐가고 있다고 했다.

물론 잠수를 하지 않는 이상 채취하는 소라의 양은 많지 않겠지만 종묘사업으로 바다에 씨를 뿌리며 애쓰게 키운 소라와 오분자기를 따가는 일부 도민들은 양심에 문제가 있다. 이런 행위는 양심을 떠나 수산자원관리법에 따라 처벌을 받을 수 있는 사안이다.

진통제를 한 움큼씩 먹으며 고된 물질을 하는 해녀들은 하루에 전복 1㎏도 잡지 못하는 날이 부지기수다. 그만큼 바다는 황폐화됐고 해산물은 고갈됐다.

그러나 얕은 바닷가에서 보말과 게를 잡는 것을 두고 호루라기는 불지 말았으면 한다. 교통지옥에 살고 있지만 교통 경찰관도 웬만해선 호루라기를 불지 않는다.

휴가를 맞아 아이들을 데리고 바다에 가보니 손톱보다 작은 보말, 동전만한 게들만 눈에 띈다. 체험 삼아 잡아봤자 반찬감도 안 될 듯싶다.

올 여름 더위를 피해 바다를 찾았다가 얼굴 붉히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제주도가 중재에 나설 일이다. 소라와 전복을 따는 것은 엄격하게 막되 보말은 누구나 딸 수 있게 말이다. 탑동에 보말이 사라졌지만 추억과 낭만은 사라진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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