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제2공항과 민의 수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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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한성. 재 뉴질랜드 언론인

제주에 제2공항이 들어선다는 소식이 나오고 나서 뉴스에서 머리띠를 두른 지역 주민들을 보고 깜짝 놀랐다. 주민들이 공항 건설 반대 대책위원회를 만들고, 제주시와 서울, 세종시로 당국자들을 찾아다닌다는 소식도 들렸다.

반대 이유는 여러 가지였다. 타당성 조사 자체가 공정성과 객관성을 잃었다는 주장도 있고, 고향이 없어지지 않을까하는 불안감도 있었다. 그 중에서도 유독 눈길을 끄는 건 주민들의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는 항변이었다. 주민들의 말을 빌리면 마른하늘에 날벼락처럼 이루어진 결정 과정에 주민 의견은 배제됐다는 것이다.

이는 당국자들도 어느 정도 인정하는 모양이다. 주민 의견을 듣다보면 시간이 걸려 사업을 제대로 추진할 수도 없고, 투기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의견 수렴 과정을 건너뛰는 게 불가피하다는 나름대로의 논리다.

그래서 필자가 있는 뉴질랜드의 경우를 알아보았다. 마침 오클랜드 통합개발계획이라는 대규모 사업이 추진되고 있어 좋은 비교가 될듯했다. 이 계획은 주택난을 겪는 오클랜드가 향후 30년 동안 40만 호 이상의 주택을 건설하는 데 초점을 맞춘 것이다. 농장과 집을 학교 등 공공시설 부지로 내놓아야할 사람들도 많은 모양이다. 타당성 조사와 계획 수립은 제주의 경우처럼 전문가들로 구성된 독립적인 자문기구가 맡았다.

그런데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을 법한데도 계획 발표 후 불만의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는다. 뉴질랜드에서도 부동산 투기가 활개를 치지만 그게 골칫거리로 부각되지도 않았다. 대책을 세우면 된다는 것이다. 시 당국이 이 계획을 받아들고 회의를 거듭 하더니 드디어 15일 내용을 크게 수정하지 않고 수용한다고 발표했다. 조용하면서 거침없는 일처리였다.

잡음이 없는 이유가 무엇보다 궁금했다. 그런데 오클랜드 시 당국자에게 문의했을 때 돌아온 답변은 의외로 간단했다. 타당성 조사 과정에서부터 주민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용했기 때문에 그렇다는 근거 있는 자신감이었다.

그러면서 자료를 보여주었다. 자료에 따르면 본격적인 계획 수립에 걸린 기간은 5년이었다. 이 가운데 주민 의견을 수렴하는 데만 2년이 걸렸다. 우선 개발계획 초안을 만드는 과정에서 6개월 동안 주민들로부터 제안서를 접수받았다. 이 기간에 접수된 제안서는 9400여건에 이르렀고 지적된 사안은 무려 149만3600여개나 됐다. 이 사안들은 70개의 주제로 분류돼 공청회로 넘겨졌고 공청회는 무려 249일 동안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연인원 4000명 이상의 주민들이 공청회에 출석해 진술했다. 물론 이 과정에서 공공과 개인의 이익은 엄격하게 구분됐다.

그리고 2013년에는 11주 동안 오클랜드 시 당국이 초안을 놓고 주민들과 집중적인 협의과정을 거쳤다. 전문가들은 이렇게 수렴한 민의의 토대위에 개발의 청사진을 견고하게 쌓아올릴 수 있었던 것이다.

남의 나라 얘기라고 가볍게 보아 넘길 사안이 아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것도 아니다.

민주 국가에서 대형 사업의 성패는 갈수록 민의 수렴에 의해 좌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간이 걸리고, 귀찮고, 때로는 비생산적으로 보일 수 있는 민의 수렴이 사업 추진의 시발점이자 핵심이라는 걸 모두가 인식하고 실천해야 하는 이유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투기에 대한 우려가 밀실 행정의 이유가 될 수 없다는 점도 뚜렷해진다. 과거의 잘못된 관행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도 개발의 수혜자이면서 세금으로 사업비를 대는 시혜자가 바로 국민이라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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