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아, 집으로 돌아가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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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희. 수필가

잠 덜 깬 어스름한 새벽이다. 열대야로 잠을 설친 김에 이른 운동을 나가던 참이다.

공원 숲 속 컴컴한 곳에서 킬킬대며 두런거리는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이들 목소리다. 불빛이 반짝이는 걸 보면 담배를 피우고 있는 것 같다. 남녀 네댓 명이 서로 어깨를 포개고 있다. 밤새 찬이슬 맞으며 한뎃잠을 잔 모양이다.

연년이 여름방학마다 종종 목격되는 일이다. 저녁 늦게까지 모여 몰려다니다 집에 가질 않고, 어느 때는 정자에서 혼곤하게 잠든 모습을 볼 때가 있다. 후줄근한 차림에 곁엔 소주병이 나뒹굴고 담배꽁초가 널려 있다. 저러다 어린 나이에 마음의 병 못지않게 육체적인 병을 얻을까 걱정스럽다.

무엇이 저들을 집 밖으로 뛰쳐나오게 하는가. 한창 부모님의 사랑 속에 보호 받으며 자라야 할 시기에 거리를 헤매다니. 끼니는 제대로 챙겨 먹는지. 결손가정아일까. 학교에 등 돌린 문제아인가. 밤새 마음 졸이며 기다렸을 부모의 마음을 헤아리며 걷는 발걸음이 무겁다. 마음 같아선 잠든 아이들을 깨워 등이라도 다독여 집으로 보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안타까운 마음만으로는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는 무력감에 물끄러미 바라보다 지나치곤 한다. 그럴 땐, 내가 과연 어른인가 하는 자괴감이 든다. 그렇다고 무작정 다가간다고 쉽게 마음의 문을 열리도 없을 거다. 그들만이 공유하는 세계에서 내가 들이밀 빈틈이 쉽지 않으리라.

어쩌다 눈이라도 마주치면 황급하게 고개를 돌린다. 내 안타까운 시선에 경계의 눈초리로 강한 거부감이 배어 있다. 선뜻 다가가지 못하는 벽, 한번 말이라도 건네 볼 걸 하는 아쉬움에 종일 마음이 개운치 못하다.

방학 동안 청소년들의 탈선이 많이 일어난다고 한다. 반항과 갈등 그리고 가출로 이어지는 행태가 끼리끼리 모여 그들만의 세계로 어울려 빠져든다. 그런다고 모두 문제아라고 말할 수도 없다. 감성이 예민한 시기에 자칫 엉뚱한 길로 들어설까 걱정이다.

한편 나름 자신과의 싸움으로 어떤 탈출구를 찾기 위한 몸부림일 수 있다.

누구나 겪는 사춘기 그건 성장통이다. 그 시절은 왜 그리 유별나게 욕구불만이 많은지. 지나고 나면 별것도 아닌 고민거리를 품고 씨름한다.

개중에 긴 방황을 훌훌 털고 일어나 제자리로 우뚝 서는 아이를 보면 대견하고 흐뭇하다. 고약한 사춘기 병을 벗어난 자의 승리감. 한층 성숙한 모습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모습은 듬직하다. 그의 앞길은 큰 고난이 닥쳐도 뒷걸음치지 않고 부딪치며 헤쳐 나아갈 것이라는 믿음이 생긴다.

지금 내 아이 네 아이 가려가며 키울 시절이 아니다. 함께 거들고 보듬어 키워야 할 나라의 보배 아닌가. 청소년들의 방황은 외로움에서 움튼다. 어쩌면 자신을 이해해 보듬어 달라는 간절한 목소리일지도 모른다. 생각과 뜻이 같다는 것만으로 또래가 모여 집단행동을 하는 것도 이런 연유다. 소통이 필요하다.

그들은 사춘기 열병을 앓고 있는 아이들로 간호가 필요하다. 나무라거나 비난하지 말고 왜 힘들고 아픈지, 청소년들의 답답함을 들어 줄 수 있는 열린 광장을 마련해 주었으면 어떨까. 마음껏 토로할 장소, 가정과 학교 그리고 사회가 힘을 보태 소통의 장을 마련했으면 한다.

‘아이들아 집으로 돌아가렴’ 이런 주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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