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 속의 망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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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길주. 수필가

자연 공간이나 물리적인 형체들 사이에는 틈새가 생긴다. 틈새는 공간과 공간, 형체와 형체 사이를 구획하기도하지만 소통과 연결의 통로도 된다.

바다와 육지, 강과 뭍 사이에는 해변이나 강변이라는 틈새 공간이 자리한다. 물과 뭍을 공유하여 바다나 강으로 다가갈 수 있고, 육지로도 나아갈 수 있는 공간이다. “바다로 가요”란 어감보다는 “해변으로 가요”라는 느낌이 더 낭만적이고 운치가 있어 뵌다. 그래서 해변이나 강변에 놀이공간이 조성되고, 해변 축제나 강변 축제가 열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집과 집, 동네와 동네 사이 공간은 꽃길이나 놀이터가 차지한다.

산릉과 산릉, 숲과 숲 틈새는 계곡이 가로지른다. 양편의 생태를 갈라놓기도 하지만 물이 흐르는 계곡이라면 피서 공간으로도 그만이다. 경관이나 운치도 주위를 압도할 터이고.

천정과 지붕 사이에 만들어 놓은 다락은 어린시절 소중한 놀이소품들을 감추어 두었던 곳이기도 하다. 동생과 숨바꼭질하며 물래 숨던 곳. 추억과 설렘이 묻어있는 틈새 공간이다.

그 외에도 무수한 틈새나 여백이 있어 나눔과 구별, 연결과 소통의 조화를 연출해 낸다. 인간의 삶이나 인간관계에도 무형의 틈새나 여백이 있다. 거기엔 사랑이나 우정, 갈등이나 미움 같은 희로애락의 감정들이 복작인다. 너와 나, 우리와 너희 사이에 흐르는 감정들이 가정과 사회의 정서를 이루고, 국민 성향으로까지 확장된다.

일이나 활동 사이에는 휴식이라는 틈새의 여백이 설정된다. 성과지향의 중심 활동보다는 휴식이라는 틈새 여백이 우리의 삶을 더 풍요롭게 하기도 한다. 일이나 활동 못잖게 휴식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간다면 행복이 찾아드는 삶일 수 있다. 삼시 세끼 보다 간간이 먹는 간식의 즐거움 같은 행복들이.

올여름은 유난히 덥다. 그 더운 여름을 시원한 병실에서 보낸다. 열기에 맞서 땀 흘리며 사는 건강한 삶만이야 하랴마는 그래도 시원한 병상에서 더위를 비껴 갈 수 있으니 그 또한 낙이라면 낙이다. 지나온 삶을 반추하며 내일의 건강한 삶을 그려보기도 하고, 질리도록 사색하며 죽음 저편도 엿보고(?), 인터넷 공간에 끼어들어 친구들이나 낯선 이들과 농지거리도 주고받고. 맘만 먹으면 병고의 틈새에서도 즐길 수 있는 것들이 많다. 병고의 고통을 반전시키는 데 한 몫 하는 것들이다.

하기야 힘든 삶이 어디 병고뿐이랴. 병상의 고통보다 더 큰 아픔들이 다반사이니. 사업에 실패하여 거리에 나앉는 아픔은 생을 포기하고 싶을 지경에 이를 것이다. 병고는 건강을 바라며 겪는 아픔이지만 참담한 실패는 앞이 보이지 않을 암울일테니.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들과 생이별하거나 사별하는 고통도 흔하게 겪는 일이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병고에 견줄 수 없이 큰 고통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 고통들도 진통의 틈새가 있기에 완충이 되어 아픔을 덜고, 더러는 잊히며 살아간다. 그러고 보면 삶의 의욕은 활동의 틈새에서 생겨나는 듯하다. 틈새의 자양(滋養)이라고나 해야 할지….

이러저런 세상의 고통을 떠올리며 내 처지와 견주다보니 한결 마음이 편안해진다. 몸의 고통을 덜어내려는 심리적 기제가 치유에 한 몫 거듦이다. 때로는 생각이 약이 되는 것처럼. 나를 간호하는 이들을 배려하는 마음의 여유까지 생긴다.

아플수록 성숙해진다더니 병고의 이력은 인내를 키우고, 삶의 지혜도 더해준다. 생로병사가 피할 수 없는 멍에라면 그 틈새의 여백을 한껏 즐기라는.

아무렴, 이 또한 지나가리라. 타들어가는 이 폭염도, 심신에 눌러 붙은 이 고통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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