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에 대한 열정에 폭염이 사라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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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종철 제주대학교 화학·코스메틱스학과 교수>

그토록 치열하던 더위도 꼬리를 내리는 것 같다. 그러나, 이 무더위에 사과와 밀감 향이 잘 익었을 것이다. 사과 향과 자연의 꽃을 생각하니 입에 침이 고이고, 미적인 감동이 샘솟는 것 같다. 이것이 향의 역할이고 매력일 것이다.


사과 꽃으로 치장한 사과밭과 왜가리의 자태를 담고 있는 소나무가 연상되는 순간이다. 사과 꽃과 왜가리의 모습에 행복이 숨쉬고 있다. 이들 덕분에 폭염에 의한 무력감 내부로 미적 감동에 의한 행복감이 확산되고 있다.


흰색 꽃의 향기라고 해서 다같은 자태는 아니다. 은방울 꽃의 향은 그 꽃처럼 작고 귀엽다. 그러나, 백합은  모양이 크고 선이 굵은 것처럼 향도 크고 거칠다.


멋스럽고 정열적인 재스민(Jasmine) 꽃의 달콤하면서도 상쾌한 향기도 더위 탈출에 도움을 줄 것 같다. 이의 차 맛을 음미하면 정신이 맑아지며 여유로움이 저절로 빈 공간을 충만시킬 것 같다. 이 빈 공간은 정열적인 활동의 원천이다.


이런 흰색 꽃향기를 이용·창작한 향수가 ‘아나이스 아나이스(Anais Anais)’이다. 이 향수는 무소유를 몸소 실천하는 하얀 인동 꽃, 은은한 향기가 아주 감미로운 히야신스, 귀여운 은방울 꽃, 선이 굵고 강한 백합의 향 등을 품고 있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디자이너 크리스티앙 디오르(Christian Dior)와 영국의 전 왕세자비 다이애나는 이 은방울 꽃 향기를 각별히 사랑했다. 전혀 다른 시대를 살았던 두 인물은 향수 ‘디오리시모(Diorissimo)’라는 오작교를 통해 조우한다.


왜가리의 느림의 미학 속에 폭염은 녹고, 발레리나 같은 날갯짓에 숲은 청량감을 선사한다. 이 날갯짓도 향기도 바람 덕분에 의미가 부여된다. 이 바람이 무거운 더위를 조금씩 몰아내고 있다. 왜가리의 날갯짓 속에 향이 숙성될 것 같다.


풀밭에서는/ 풀들의 몸놀림을 한다./ 나뭇가지를 지날 적에는/ 나뭇가지의 소리를 낸다…/ 풀밭에 나뭇가지에/ 보일 듯 보일 듯/ 벽공에/ 사과알 하나를 익게 하고/ 가장자리에/ 금빛 깃의 새들을 날린다.(김춘수 바람) 향수라는 걸작품도 바람과 함께 생성·소멸한다.


아프리카의 땅끝인 마요트(Mayotte)는 장 폴 겔랑(Jean Paul Guerlain)에게는 천의 얼굴을 가진 섬이다. 이 섬은 꽃 중의 꽃, ‘일랑일랑(Ylang-Ylang)’의 천국이며, 향수의 섬이다. 이 일랑일랑은 화산지역에서 성장하는 나무이다. 이 나무는 꽃을 딸수록  더 많은 꽃을 맺는다.


장 폴 겔랑은 “태양 아래에서 익어가고, 해변을 적시는 바닷물에 진주처럼 반사되는 감미로운 일랑일랑의 향에 마음껏 취하는 때보다 행복한 적은 없다”고 읊었다.


그는 태양에 구워진 마요트 섬에 지은 오두막에서 더위의 짜증보다 즐거움을 느꼈다. 그는 불타는 숯처럼 붉은 땅에서 아프리카의 검은 땀과 억눌린 열정을 읽었다.


그의 삶의 리듬은 일랑일랑을 증류하는 과정에 맞춰져 있었다. 찜통 더위도 그의 열정에 무릎을 꿇고 향수의 여명이 밝았다. 이외 여러 가지 문제점도 열대의 달콤한 향으로 섬 전체를 취하게 만드는 이 향기로운 꽃을 향한 그의 열정을 진정시키지 못했다. 그 결과로 일랑일랑은 겔랑의 거의 모든 향수에 사용되었다.


왜가리의 느림의 미학에서 삶의 지혜와 창의력을 배양하고, 다양한 자연의 색깔과 향기에 심취하고, 자신의 내면세계에서 끓고 있는 열정을 마음껏 발산하면 폭염의 뿌리는 서늘한 바람으로 승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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