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손을 가진 사람
착한 손을 가진 사람
  • 제주신보
  • 승인 2016.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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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봉. 환경운동가/수필가

연일 폭염주의보다. 이글거리는 열기에 아스팔트가 녹는다.

가을로 들어선다는 입추가 지났는데도 온도는 떨어질 줄 모르고, 재난안전대책본부에서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폭염 대비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한반도만이 아니라 온 지구 곳곳이 뜨거운 화염에 휩싸이고 더위에 약한 가축도 폭염과 사투를 벌이는 형국이다.

무분별한 냉·난방기 가동과 편리를 위한 생활문화로 일회용품이 넘쳐나고, 쓰레기가 산을 이룬다.

문제의식을 느끼긴 하면서도 나 또한 똑같은 생활문화를 누리고 있으니 어찌하랴. 엘니뇨 현상은 기삿거리일 뿐이다.

점심을 먹고 나자 일손을 잠시 미루고 여유를 부렸다. 시원하게 돌아가는 선풍기 바람을 맞으며 독서로 피서를 시작하는데, 웬 굉음이 들렸다. 집에서 지척인 한길에서 사고가 났나 보다.

창문으로 다가가 바라보니, 자동차와 자전거 도로를 분리한 현무암 경계석을 들이받은 차량이 보였다. 사람이 다치지는 않았는지 운전자는 내려서 차를 살피고 전화를 거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일요일이라 조치하기가 어려운가. 가까이 있는 카센터로 몰고 간다. 갈그랑거리는 소리가 들리니 많이 망가진 것 같다. 사고 지점은 돌덩이가 너저분하게 흩어져 엉망이다. 자전거가 겨우 지나갈 수는 있을 것 같지만 모르고 속도를 내거나 밤길 자전거 타기는 위험하게 보였다.

다음 날도 사고의 흔적은 복원되지 않고, 치워지지도 않은 채 그대로다. 카센터를 찾아가 사고를 낸 차량의 인적사항을 물었다.

많이 망가져 고칠 수 없어 그냥 보냈다는 것이다. 인적사항을 알 수 없자 집 앞의 흉물이 된 돌덩이를 어찌할까 고민되었다. 파출소에 신고할까, 읍사무소에 알릴까 하며 망설였다.

공공 시설물을 훼손했으면 반듯이 원상복귀를 해 놓아야만 한다.

특히 사고를 유발할 수 있는 경우는 조처해야 함에도 내버려두면, 그도 중한 책임이 따를 것이다. 교통사고의 유형 중에 사고 후 그대로 방치해 이차적인 사고로 이어지는 경우를 종종 보아 왔다.

한 남자가 운동복 차림으로 지나가다 사고 현장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반대편 자전거 도로를 달리는 행렬에 눈을 보내며 무슨 생각을 하는 듯했다.

휴가철이라선지 많아진 자전거 하이킹 행렬이 사고 지점으로 지난다면? 하고 생각하니, 도미노처럼 엉켜 넘어지는 사고를 상상만 해도 소름이 돋는다.

남자가 허리를 굽혀 힘겹게 큰 돌덩이들을 치우기 시작하더니 작은 돌멩이까지 일일이 주워 한편으로 치운다. 폴폴 날리는 흙먼지도 아랑곳없다.

높은 기온에 습한 날씨라 오늘 체감 온도는 37도란다. 예보에 맞춘 듯이 더위가 온몸을 감싼다.

남자는 어깨에 걸친 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말끔하게 치워진 사고 현장을 잠시 살폈다. 힘든 일을 마무리한 그는 여유 있게 걸어갔다. 그의 입가에 번졌을 고운 미소를 보지 못한 게 아쉽기만 하다.

뒤이어 내리막길을 내려선 자전거 한 대가 쌩~하고 지나갔다.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가 어쩌면 다칠 수도 있었다. 다행이다.

폭염도 미소 지었을 손에 의해 도로가 평온을 되찾았다. 착한 손을 가진 그의 얼굴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