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각(錯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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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어떤 대상이 특수한 조건에서 보통 때와 달리 지각되는 게 착각이다.

몸이 얼었을 때 목욕탕 물이 몹시 뜨겁게 느껴지는 것, 빨강과 녹색을 적당한 비율로 섞은 빛이 노랑으로 보이는 사실 ‘혼색(混色)’도 착각의 한 예다.

남의 밥사발이 높아 보이는 법이다. 상대의 풍모가 더 빼어나 보이고 그가 지닌 물건이 내 것보다 훨씬 좋고 비싸 보이는 것 또한 착각인 경우에 해당된다. 지진에 대한 공포는 실제 흔들리지 않는 건물도 요동치는 것처럼 느낄 수 있다. 같은 1㎏의 무게도 솜뭉치같이 부피가 큰 것이 작은 쇳덩이보다 가벼워 보인다. 선입관 때문이다. 실온(室溫)이 같은데 붉은 계통으로 도배한 쪽이 푸른 배색의 방보다 더 따뜻하게 느껴지는 것 또한 감각 사이의 상호 연관에 의해 생기는 착각현상이다.

보고 느끼는 것에 국한하지 않고, 사람들은 일상에서 수많은 착각을 경험하며 산다. 정서의 기복이 착각에서 나오는 것이라면 가벼이 지나칠 일이 아니다.

외롭다고 말하면 외로워질 것 같아, 슬프다고 말하면 정말 슬퍼질 것 같아, 하루 이틀 참다 보니 사람들은 내가 정말 행복해진 줄로 안다. 세상 경험이 부족한 이들이 가장 쉽게 저지르는 실수 중의 하나는, 하나를 알면서 셋을 안다고 착각하는 것이라 한다. 아는 게 일부임에도 마치 다 알고 있기나 한 것처럼 본인 스스로 착각한다는 얘기다.

사물을 보고 느낌은 반드시 외계사물의 객관적인 성질을 그대로 모사하는 게 아니다. 우리가 눈으로 외계를 볼 때는 카메라로 찍은 것처럼 정확한 영상을 얻는 게 아니란 뜻이다. 시각의 일반원리에 따라 변형한 영상을 얻어 들이는 것일 뿐이다. 그러니 주변이 착각으로 가득 차 있다고 할 수 있다.

착각이란 어떤 사실을 실제와 다르게 보거나 느끼고 생각하는 것을 묶어서 하는 말이다. 직접 보고 듣지 않고, 누군가에 의해 간접적으로 전해 들었기에 생기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외계의 조건, 이를테면 올여름 같은 폭염 속에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수도 있다.

나는 제주新보에 칼럼을 쓰면서 그때마다 긴장한다. 신문의 위상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다양한 소재를 만나야 하고, 세상과 통섭하기 위한 장치로 결핍하지 않아야 한다.

그것은 지역을 대표하는 신문으로서의 위상과 가치이기도 하다. 글의 품격에도 소홀할 수 없다. 미리 써 퇴고한 뒤, 이틀 전에 송고하고 있다.

이 ‘이틀 전’은 최종을 유예하기 위한 예열의 시간이고 장치다. 보내 놓고도 행여 해 열어 보는 버릇이 있다. 문장, 구성, 어휘, 표기법을 한 번 더 훑고 나서야 안도한다. 전송 뒤, 몇 번 정정한 적이 있어 고질이 돼 간다. 내게는 당연한 일이지만, 오피니언 담당 기자의 노고를 끼친다. 이럴 수가. 얼마 전, 담당 기자에게 추가 메일을 보냈다. “본문 위에서 8행째, ‘~아니었다’를 ‘아니였다’로 바로잡아 주실래요?”

잠시 뒤 생각하니, 바로잡아 달라 한 게 틀렸지 않은가. 착각한 것이다. 국어선생 체면 구기게 생겼다. 늘 꼼꼼히 챙기는 담당 기자에게 미안해 이번엔 전화를 걸었다. “한애리 기자님, ‘아니었다’가 맞지요? 그냥 놔두세요. 더위 먹은 것 같네요. 미안합니다.” 폰을 타고 귓전으로 오는 한 기자의 밝은 웃음소리가 서늘하다.

이제 더위도 제풀에 갈 즈음이니, 이후 이런 착각 따위는 없을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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