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평사원서 대기업 최고 경영자에 올라
현장 뛰며 샐러리맨 신화를 쓴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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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호 (주)LG이노텍 前대표 "최고 되겠다는 목표 갖고 끊임 없이 자신과 도전해"
▲ 평사원으로 입사해 대기업 최고경영자 자리까지 오르면서 샐러리맨 신화를 일궈낸 허영호 대표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LG그룹에서의 현역 35년 동안 부족함도 아쉬움도 없이, 더 일을 하라고 하면 신물이 날 정도로 일을 했다. 그 힘의 원천은 정면돌파, 즉 현실을 받아  들이고 최선을 다하고 최고가 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끊임없이 자신과 도전하고 실천하는 것이었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인 LG전자에 1977년 평사원으로 입사해 최고경영자 자리까지 오른, 소위 샐러리맨 신화를 일궈낸 허영호 前 LG이노텍 대표(64·현 코칭경영원 파트너 코치).


자수성가한 사람들의 삶은 한편의 드라마다. 허 前 대표 역시 평사원에서 최고경영자가 되기까지 과정 역시 마찬가지다.


1999년까지만 해도 LG전자에서 TV사업부장으로 승승장구하던  허 사장은 갑자기 계열사(LG마이크론) 대표이사로 발령을 받게 되는 데 이 때가 40대 후반의 나이(만 48세)였다. 계열사 최고경영자로 자리를 옮긴 것이지만 반가워할 상황만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이 회사는 IMF이후 심각한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었기 때문이다.


임직원들과 위기의식으로 무장해 정면돌파에 나섰고 불과 1년 만에 흑자로 전환시키고 코스닥 상장까지 성사시켰다. 그런데 그 해 말 만성적자에 허덕이고 있는 또 다른 계열사인 LG이노텍의 부품사업을 재건하라는 특명을 받았다.


허 前 대표는 직원들과 함께 현 상황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공유된 목표의식으로 지속가능한 경영혁신과정을 거치면서 당시 연매출 3000억원대의 중소 규모의 부품회사를 10여 년 동안 최고경영자로 재직하면서 15배 성장한 연매출 4조5000억원대의 글로벌 부품소재 기업을 만들어 놓은 주역이 되었다.


1970년 초반 TV가 매우 귀하던 시절, 서울대 전자공학과에 재학중이던 젊은 청년 허영호는 고향집에서 마을주민들이 TV가 있는 집에 모여 드라마 ‘여로’를 보며 하루의 지친 일과를 달래는 것을 보고 “앞으로 우리나라 각가정에 TV를 보급하는 일에서 삶의 가치를 찾아야 겠다”고 다짐했다.


1977년 구미에 소재한 LG전자(옛 금성사) TV생산공장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그 꿈이 이뤄졌다. 당시 많은 젊은이들이 서울 직장생활을 동경했지만 드라마 ‘여로’와의 인연으로 지방의 제조현장을 선택했다.


“현장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블랙홀 같은 대단한 힘을 가졌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젊은이 들에게 현장 경험을 강력 추천한다. 훗날 리더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탄탄한 버팀목이 될 수 있다” 미래의 리더 지망생들에게 늘 전해 주는 이야기이다.


TV생산기술과에서 첫 업무를 시작한 허 前 대표는 2000년 계열사 최고경영자로 자리를 옮기기 전까지 20여 년 간 TV사업현장을 지키며 오늘날 LG TV 사업기술의 원동력 역할을 해왔다.


그룹 내 모기업에서 계열사 사장으로 이동하는 것이 위기일 수도 있었지만 그는 CEO 부임초기에 “악착같이, 될 때까지, 끝까지”라는 구호와 함께 임직원들과 혼연일체가 되어 LG이노텍을 글로벌기업으로 자리매김하는 반전의 기회로 만드는 주역이 됐다.


조문욱 기자
mwcho@je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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