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발품 팔아 말하는 제주산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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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동수 편집국장
벌초철이다. 일찍 서두른 집안은 조상 묘를 찾아 깨끗이 단장했을 것이고, 그렇지 않은 곳은 오는 주말에 후손의 도리를 다하려고 할 것이다. ‘식게 안 헌 건 놈이 모르고, 소분 안 헌 건 놈이 안다. (추석 명절 안 챙기는 것은 남이 모르지만, 벌초 안 한 것은 남이 안다)’는 말처럼 어느 집안이나 추석 전에는 벌초를 끝낸다.

누구나 벌초철이 되면 마음부터 바빠진다. 이 산(墓) 저 산(墓)을 종횡무진 찾아다니다 보면 묘 주변을 찬찬히 살필 여유가 없다. 여유가 있더라도 집안에 어른이 없으면 묘와 주변 구조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없다. 이런 상황을 감안해 본지는 김유정 작가의 ‘산담 기행’을 최근부터 연재하고 있다. 그는 동자석과 돌담 등을 연구해온 제주 돌문화 전문가다. 나 홀로 산담(무덤 주변에 쌓은 돌담 울타리) 답사에 20년 가까운 세월을 보냈으며, 수많은 무덤을 마치 할머니 무덤처럼 생각하면서 코시(고사)를 지낸 뒤 대화를 했다고 한다.

▲작가의 산담 기행에는 산담에도 ‘올레’가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신문(神門)’이라고 하는 올레는 산담 안팎을 연결하는 통로다. 영혼의 출입구인 셈이다. 그래서 영혼이 다니기 좋도록 잔돌이나 납작한 돌을 깔아 평평하게 했다. 그 위에는 넓적한 크기의 정돌을 얹어놓았다. 올레 없는 산담은 산담 정면 중앙에 안팎으로 계단을 놓아 영혼의 출입을 쉽도록 했다.

산담 네 귀퉁이에는 귓돌(팡돌ㆍ어귓돌)을 얹혔다. 사람이 무덤 출입을 쉽게 하기 위한 것으로, 산담 조성 때 사위들이 놓았다고 한다.

산담과 2~3m 떨어진 곳에는 따로 쌓은 돌담인 새각담이 있다. 사악한 기운이 무덤으로 스며드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때로는 돌담 대신에 나무를 심었다. 바람코지(바람이 많이 부는 곳)에 있는 무덤을 살펴보면 대개 새각담을 갖추고 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봉분은 용(龍)형태를 띠도록 하고, 뒤편을 용의 꼬리처럼 길게 했다. 이를 ‘용미(龍尾)’라고 하는 데, 비가 올 경우 빗물을 좌우로 나누어 흙이 쓸려 내리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용미는 망자의 얼굴 바로 윗부분에 있다. 봉분 앞에는 ‘계절(階節)’이 있다. ‘지절’, ‘제절’ 이라고도 하며, 봉분이 앞으로 밀려나지 않도록 하면서 계단 역할을 한다.

▲모든 것이 “아는 만큼 보인다(知則爲眞看)”라고 한다. 작가는 제주산담을 ‘지상에 누운 세계 최대의 피라미드’이며 ‘시ㆍ공간을 넘어선 대지예술(Earth Art)’이라고 했다.

벌초를 끝내고 이마에 흐르는 땀을 산들바람에 식히며 고개를 들어 산야를 둘러보자. 이 말이 과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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