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초하는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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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양택. 전 탐라교육원장/수필가

이 세상의 어떤 것도 그 자리를 영원히 지킬 수는 없다. 언젠가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마련이다. 그것이 자연의 진리며 올 여름 폭염도 그렇게 물러나는 듯하다.

어느덧 절기로는 가을의 문턱에 들어섰다. 오곡백과도 무르익어 가고 귀뚜라미 소리도 저 멀리서 은은하게 들린다. 우리들에게 또 다른 희망을 안겨주는 소리다.

음력 8월 초하루를 전후하여 제주만이 갖고 있는 독특한 벌초문화가 행해진다.

요즘 만나는 사람마다 “소분(掃墳) 했수꽈?(벌초 했습니까?)”란 인사를 주고받는다.

이 말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뜨끔 할 때가 있다. 덧없이 한 해가 흘러가는구나 하는 탄식과 더불어 생각에 잠긴다. 조상에 대한 은덕은 얼마나 갚았는지, 흩어져 살고 있는 친지, 친척들은 무고한지, 부모에 대한 효는 얼마나 실천을 했는지….

이처럼 ‘벌초’란 말속에는 사람이 살아가는 도리를 해야 할 것들을 다분히 내포한다.

예전에는 벌초를 할 시기에 학교도 벌초 방학을 했다. 코흘리개 어린이들도 아버지의 손을 잡고 벌초행렬에 나서고, 공무원들도 휴가를 내 참여를 했다. 도외나 외국에 가 있는 사람들도 고향에 다녀갔다.

벌초하는 날은 여명의 시간에 길을 나서 어둑할 때 돌아오곤 했다. 차가 귀하던 시절이라 걸어서 다녔으니 그 고통을 말로 다하랴.

그러나 벌초는 당연히 해야 하는 일로 여겼다. 단순히 풀을 베거나 묘를 깨끗하게 정리하는 것 말고도, 조상의 숭고한 정신을 계승하고, 효의 근본 바탕이 되는 현장이기도 했다.

그런데 요즘 들어 벌초문화가 많이 변하고 있다. 관심도 예전 같지 않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세대와 생활환경이 바뀌고, 간편함을 추구하기 위해 납골묘, 납골당이 어느덧 장묘문화에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그리고 핵가족이 되면서 벌초를 할 사람이 줄어드는가 하면, 고령화 문제와도 직·간접적 영향을 받고 있는 듯하다.

몇 달 전 제주에서 있었던 일화다.

조상 묘 벌초와 제사를 하는 조건으로 큰아들에게 재산을 물려준 80대 어머니가 아들이 이를 게을리 한다며 재산을 되돌려 달라는 소송에서, 재판부는 “약속을 지키지 않는 아들에게 물려받은 재산을 다시 어머니에게 돌려줘라.”고 판시했다 한다. 조상 숭배에 대한 마음가짐을 반듯하게 가지라는 의미를 단적으로 보여 준 사례다.

제주도가 실시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44.2%가 본인 사망 시 장례 방법으로 화장을 선택했다. 매장은 17.8%로 상대적으로 적었다.

화장 선호 이유로는 시대적 추세 49.8%, 장례절차 용이 30.3%에 이어 벌초 문제 때문이 16.3%였다.

관계자는 “전국적인 장례문화 변화 탓도 있지만 핵가족화로 벌초 등 산소 관리의 어려움이 늘어나는 것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시대 변화에 따라 벌초문화도 변할 수밖에 없다. 그걸 인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허전함이 자리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 마음속에 조상 숭배정신이 희미해지고, 효의 문화도 점점 사라지지 않을까 해서다.

우리 마음 밭에 벌초에 대한 생각은 버리지 말았으면 한다. 조상의 숭고한 얼과 효의 문화를 이어 간다는 의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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