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이 춤을 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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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선/수필가

반야사에서 ‘만다라 숲 심리치료’ 교실이 열린다는 전갈이 왔다. 수필집 ‘빛의 만다라’ 발간을 사흘 앞두고 있는 시간이라 망설여졌다. 코앞에 닥친 일도 많지만 어떤 만다라를 만날지가 궁금하였다. 시간에 쫓기면서도 발걸음은 어느새 반야사에 당도해있었다.


만다라 치료는 우주를 표현하는 그림에 색을 칠하면서 시작되었다. 주제를 선택하고  그에 어울리는 색을 칠한 후, 그림을 관찰하고 과정을 살피면서 감상과 느낌을 나누는 것이다. 만다라는 치유능력을 가진 원 모양에서 발전하여 자아를 발견하게 이끌어 줌으로써 치유에 이르게 한다. 한마디로 마음이 만들어 내는 희로애락의 상처와 응어리를 그림으로 녹여낸다.


지도 강사는 이십여 종에 이르는 워크북 중에서 하나를 고르게 하였다. 그림자 워크북은 성찰하는 마음, 희망 만다라, 상처치유 만다라, 자화상 만다라, 영혼을 상징하는 종류로 나누어져 있었다. 페이지를 넘기면서 무의식중에 들어오는 밑그림에 색을 칠한 후, 그림의 원작자와 대화를 나누면서 치유를 유도한다.


나는 보라색 겉표지의 워크북을 들고 그림을 넘기고 있었다. ‘영혼이 춤을 추어요.’라는 제목이 눈에 띄어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해바라기 꽃처럼 중심부에 씨가 맺힌 듯 칸이 여덟 개로 나누어져 있고 꽃잎으로 보이는 물체가 궁금증을 더한다. 새 머리 형상을 한 꽃잎의 윗부분은 중심부를 향해 있고 꼬리는 가늘어서 마치 이승의 빛과 연결하는 고리처럼 느껴졌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제3세계를 상징하는 듯하다. 사람이 죽었을 때 육신과 분리된 영혼이 우주에서 서로 손을 잡고 춤을 추는 모습을 닮았다. 불현듯 할아버지와 할머니,  시아버지와 친정아버지의 영혼으로도 보였다. 나의 아픔을 떠올려보다가 다음 생은 편안할 것만 같아 위로가 되었다. 두렵게만 생각되던 저승에 대한 동경심까지 일었다. 


밑그림은 분홍, 파랑, 녹색, 빨간색으로 채우고, 여덟 마리의 새가 춤추는 것 같은 영혼의 눈에 검은 색을 칠했더니 마치 살아있는 듯하다. 꼬리가 달린 물체에는 네 가지 색을 교차시켜 마주 보게 하고 바탕색은 연두로 꽉 채우자 꽃이 핀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칠해 놓고 보니 영혼도 자라고 숨을 쉴 것만 같다. 식물처럼 성장하고 인간처럼 갈등하고 소통하면서 신비로운 에너지를 뿜어낼 듯하다. 영혼에서 사랑이 느껴졌다.


이젠 워크북을 관찰하고 감상할 차례이다. 마지막 칸에 누군가에게 하고 싶었던 메시지를 담아 완성한 뒤 사진으로 찍어 마음을 전달한다. 빛보다 빠른 것이 정신이라고 한다. 가운데를 먼저 바라보면 중심에선 무의식의 상태를 확인하는 거울로 보인다니 신기하였다. 그림을 가지고 우울증을 극복하는 계기도 얻을 수 있다고 하니 놀라웠다. 족집게처럼 그림으로 마음의 상처를 치유해주며 눈물까지 흘리게 하였다. 그림 속에서 에너지가 나와 닫힌 가슴에서 사랑이 흘러나오도록 다독여주고 있었다.


참석자 서른두 명에게 자신의 그림을 들고 앞으로 나오게 하였다. 내 순서가 되었다. 강사는 내 그림의 중심부를 보면서 “이제까지 너무 갇혀 지냈군요. 바탕색을 보니 앞으로 펼칠 꿈이 많네요. 희망이 넘쳐요. 하고 싶은 일 계속하셔요.”라며 기를 불어넣었다.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지난 세월이 색채 이미지로 드러날 수 있었다니. 공무원의 길도 교사의 길도 접은 채 가족의 건강한 삶을 위해 뒤로 물러나 당연한 일로 알고 지내온 사십여 년의 생이 아니던가.


출판기념회를 앞두고 평자들의 질타가 염려되어 불안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남은 생은 글쓰기만이라도 놓치고 싶지 않았는데 신이 허락해 주실지 사뭇 걱정이 되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림을 통하여 채워야 할 때, 비워야 할 때, 나아가야 할 때, 움직여야 할 때를 알게 되었다. 만다라는 보이지 않는 내 영혼의 욕망을 드러내 보여주었다. 마음 문을 열고 문제를 해결하며, 자기 발견과 자아 성찰에 이르는 방법을 조용히 가르쳐 주고 있었다.


극락세계가 바로 내 안에 있었다. 

 

백나용기자 nayong@je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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