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을 위해 향수를 창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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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크 겔랑(Jacques Guerlain)은 여든 살 때도 향수 제조에 열정을 불태웠다. 그는 그 당시에 유일한 여신인 부인을 위해 시프레계열 향수를 창작하는 데 혼신의 힘을 쏟았다.

 

자크 겔랑은 손자인 장 폴 겔랑에게 다음과 같은 좌우명을 일러줬다. “한 가지는 기억하거라. 함께 사는 여인과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향수를 만들어라.”

 

그 때 할아버지는 “안타깝게도 이제 나는 늙은 여인들을 위한 향수밖에 만들지 못하는구나”하면서 씁쓰레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오늘날처럼 장수시대에 자크 겔랑의 삶의 철학과 열정의 단면을 되씹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장 폴 겔랑은 할아버지의 좌우명을 깊이 되뇌면서 자신이 숭배하는 여성에게로 확대시켜 나갔다. 그는 할아버지처럼 동물과 예술품, 그리고 자연을 사랑한 것이 향수의 세계로 자신의 뜻을 펼치는데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장 폴 겔랑은 시력이 나빴지만, 천장 높이가 190cm 밖에 되지 않는 열악한 공간에서 끊임없이 도전했다. 그 결과로 그는 며칠 만에 백여 가지의 천연 원료와 합성 원료의 향을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겔랑 사는 가족 기업이기 때문에 발생할 수 있는 논쟁을 미연에 차단하기 위해 형제 중에 한 사람만이 회사 운영에 참여할 수 있도록 규칙이 정해져 있었다.

 

우리나라 대기업 경영과 관련하여 형제의 난이 볼썽사납게 진행되었다. 그러나, 초창기부터 기업 윤리와 철칙이 지켜짐으로써 여러 대에 걸쳐 겔랑이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을 것이다.

 

1955년 유난히 추운 겨울에 조향사 자크 겔랑은 볼 드 뉘(Vol de Nut, 야간 비행)를 제조하고 있었다. 이를 위해서 황수선 정유가 필요했다. 이 정유를 다른 가문으로부터 어렵게 구입했다.

 

그런데 다음 날 이 정유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이에 무척 낙담한 할아버지는 손자에게 황수선을 만들 것을 부탁했다. 장 폴 겔랑은 황수선을 만들기 위해 온몸을 던졌다.

 

행운은 대담하게 도전하는 사람에게 미소짓는 법이다. 장 폴 겔랑은 합성 원료에 천연 정유, 예컨대 수선화, 제비꽃잎, 극소량의 재스민, 약간의 월하향을 혼합하여 황수선 정유를 만들었다.

 

이로써 화학 공부에 매진하면서 회사에 참여할 준비를 하고 있던 형을 제치고 장 폴 겔랑이 가업을 이어받게 되었다. 이후 그는 아침에는 피부용 크림과 비누 작업장, 오후에는 제품 포장실 등에서 빈틈없는 생활을 했다.

 

장 폴 겔랑은 “향의 세계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향의 세계는 꿈의 세계이며, 에너지가 교감되는 세계다. 내게 영감을 준 것은 여자가 아니라 향과 만나는 순간이었다”고 읊었다.

 

그는 향은 가슴 깊이 문어둔 풍경이나 잊혀진 삶의 순간을 다시 연상시켜주고,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을 되살려주고, 권태로운 삶에 활력을 붇돋아주는 걸작품이라는 것을 인식했다.

 

장 폴 겔랑은 젊고 슬기로우며 세속에 물들지 않은 순박한 한 여인을 위해 ‘샹다롬’을 창작했다. 이 향수에는 인동덩굴과 치자나무 꽃같은 봄꽃들이 호흡하고 있다. 여기에 감귤의 향을 더하고, 재스민과 극소량의 일랑일랑으로 색을 입혔다.

 

자크 겔랑과 장 폴 겔랑은 사랑을 희생한 대가로 향의 진면목을 터득했고, 자신들이 창작한 향으로부터 연인을 마음껏 사랑했다. 이들은 한 분야에 열정적으로 도전하여 새로운 장을 펼쳐 수많은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는 옷, 향수를 입혀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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