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 도생(圖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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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백수의 제왕, 챔피언벨트는 사자의 독점물이다. 타이틀매치를 벌일 마땅한 상대가 없다. 하지만 사자가 최강의 포식자일지언정 무소불위의 힘을 갖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옛말인 것 같다.

동물의 세계를 훔쳐보노라면 사자가 쫓기고 내몰리는 굴욕적인 장면들이 벌어진다. 약육강식의 철칙에 금이 가는 이변이 눈 맛을 돋운다. 만날 당하다 약자도 살아남는 길을 찾고 있다. 인간 세상에 빗대면 각자도생의 방책인 셈이다.

버펄로 한 마리가 사자의 기습을 받아 사정없이 물려 뜯기고 있다. 숨통을 끊으려는 포식자의 공격이 막판에 이르는 순간, 떼 지어 몰려온 버펄로들. 한 놈이 불쑥 나서더니 사자들을 뿔로 들이받으며 공중으로 패대기친다. 먼지를 일으키며 달려드는 버펄로 무리. 네댓 마리 사자가 힘 한 번 못 써 보고 줄행랑을 놓는다. 버펄로는 몸집답게 힘센 데다 성나니 걷잡지 못한다. 박수를 보냈다. 단지 약자에게 보낸 연민에서가 아닌, 죽어 가는 목숨을 구한 동료애를 향한 동정의 박수다.

사냥에 성공한 사자들이 막 회식을 즐기려는 참이다. 떼거리로 나타나 슬금슬금 눈치 보는 불청객, 하이에나. 수사자가 흰 이를 드러내 으르렁거리자 주춤주춤 물러서지만 아예 포기할 의사는 없는 눈치다. 능청맞다. 실랑이를 벌인다. 힘의 우열은 분명한 것인데 사자들도 하이에나를 함부로 하지 못한다. 묘한 역학관계다. 신경전이 벌어지는 사이에 노을이 지고 식사를 끝낸 사자들이 어슬렁거리며 사라진다. 뼈만 앙상하게 남은 시체에 달라붙어 만찬을 즐기는 정글의 청소부 하이에나!

우연히 만났을 테다. 열네 마리의 암사자와 코끼리 한 마리가 한바탕 싸우고 있다. 덩치로 하면 사자의 열 배쯤 될 코끼리지만 그에겐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이 없다. 사자들이 합세해 코끼리를 넘어뜨리려 등으로 타오르고 뒷다리를 물며 맹공을 퍼붓는다. 한꺼번에 서너 마리가 물고 늘어져도 끄덕 않는 코끼리. 달라붙은 사자들을 태운 채 이리저리 뿌리치며 사력을 다하지만 쉽게 떨어져 나갈 그들이 아니다.

한계상황에 몰리면서 코끼리가 속력을 다해 냇물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두어 마리가 떨어져 물속에서 허우적거리자 도망치는 사자들. 때를 놓칠세라 코끼리가 사자들을 몰아치기 시작한다. 기세를 잡은 코끼리의 거친 공격에 사자들이 포기하고 달아난다. 사자들, 코끼리를 건드렸다 혼쭐났다.

몽구스는 처음 본다. 녀석, 몸길이 50㎝ 꼬리 길이 38㎝에 불과해 왜소하다. 고양이족제비라 불리는 게 그냥 붙은 이름이 아니었다. 아주 날쌔다. 생김새처럼 재빠르고 몸놀림과 순발력이 탁월하다. 그래선지 겁이라곤 없다. 암사자 서너 마리가 달려드는데 외려 선제공격을 취한다.

그 자그만 게 떡 벌린 사자의 아가리를 향해 쇠꼬챙이처럼 파고들려 한다. 사자들이 앞뒤로 덮치려 하면 삽시에 몸을 돌려 되받아치려 든다. 결정적으로 몰리면 잽싸게 땅속에 숨었다 이내 나타난다. 뱀에 대한 저항성이 강해 코브라를 먹이로 한다나. 그 뒷심으로 사자를 만만하게 보는 것인가. 긴박감이 풀리자 초원 위로 살같이 몸을 날려 사라진다.

정글이 갑자기 무질서에 빠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질서가 엄존하지도 않는, 전에 없던 질서 재편성의 낌새가 꿈틀거리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어차피 적응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한다. 그래서 정글에선 이것에 목숨을 건다. 각자 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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