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2년 신성여학교의 수업 장면. 한국인 수녀들이 성경·영어·국어·산술·재봉·역사 등 과목을 가르쳤다.

 

1909년 10월 18일 프랑스 파리외방선교회 마르셀 라크루 신부는 향사당을 교사로 활용해 제주사립신성여학교를 설립했다. 제주 최초의 신식 여자교육기관이 태동했다.

도내 여성들이 새벽하늘을 밝히는 샛별이 되도록 학교명을 신성(晨星)으로 지었다.

라크루 신부(1871~1929)는 1901년 이재수의 난으로 학살된 300여 명의 천주교인을 매장할 황사평 안장지를 홍종수 제주목사로부터 양도받은 인물이다.

그는 학교 운영을 위해 샬트르성바오로 수녀회 소속 한국인 수녀 2명을 초빙했다. 1914년 1회 졸업생 6명에 이어 2회 6명, 3회 16명을 배출했다.

포교 활동 일환으로 교육사업에 뛰어든 창립자 라크루 신부가 전주성당으로 전출되자 학교는 재정난에 봉착했다.

이 기회를 노려 일제는 학교 건물을 강제로 빼앗아 일본식 절(東本願寺)로 바꿔 놓았다. 일본의 풍습에 따라 일본인 거류 사망자들의 유골 안치소로 이용되기도 했다.

1916년 7월 재학생 150여 명이 있었지만 설립 7년 만에 휴교를 하는 비운을 맞았다.

광복이 되자 1회 졸업생이자 교육운동가인 최정숙을 중심으로 학교 재건을 추진해 1946년 신성여자중학원으로 재 개교했다.

향사당에 학교가 들어섰지만 미군정은 일본인 소유의 적산(敵産) 건물로 취급했다.

신성학원은 법정 투쟁에도 환수를 못하는 불운을 겪었으나 졸업생들과 후원회원들이 성금을 모아 건물과 부지를 되찾았다.

1949년 제주신성여자초급중학교로 정식 인가를 받았고, 최정숙은 교장으로 취임했다.

최 교장은 여성문맹 퇴치와 계몽운동에 앞장서면서 1964년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교육감이자 초대 제주도교육감으로 선출됐다.

향사당에 있던 학교는 1949년 삼도2동 인천문화당 터로 옮겼고, 1979년에는 도남동으로 이전했다. 2002년에는 영평동으로 신축 이전했다.

근·현대사를 거쳐 여성 선구자를 배출한 신성여자고등학교는 2009년 창립 100주년을 맞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