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비가 그립다
제비가 그립다
  • 제주신보
  • 승인 2016.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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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의. 수필가

제비를 매개로 인생을 역전한 사람은 연흥부(燕興夫)가 유일하다. 흥부전이야기다. 흥부전은 조선후기에 판소리계통의 민담을 체계화한 고전소설인데 소설 속 연흥부는 억세게 재수 좋은 사나이다.

작자와 연대는 미상이지만 소설의 의도하는 바가 사회저변에 끼친 영향은 다양하다. 해학과 풍자로 권선징악과 인과응보 사상을 파급했다는 평을 받는다. 역사적으로 조선후기는 반상(班常)과 빈부 격차가 만연했다. 동시대를 풍미했던 춘향전과도 일맥상통하는 데가 있다.

인생역전은 천지개벽에 비견되는 큰 사건이다. 어느 날 찢어지게 가난한 연흥부라는 사나이가 다리 부러진 제비와 조우하면서 화두가 전개 된다. 이 젊은이가 부러진 제비 다리를 정성껏 깁스해서 날려 보냈더니, 그 제비가 이듬 해 강남에서 돌아오면서 박 씨를 물고 왔다.

이때부터 연흥부의 파란만장한 인생역전의 막이 오른다. 이렇게 보은의 상징으로 등장하는 제비를 은혜를 아는 새, 봄의 전량사라 불렀다. 제비예찬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제비가 보이질 않는다. 도심의 전깃줄에 새까맣게 앉아 있던 제비들이 다 어디로 간 걸까. 행방이 묘연하다.

한 때 제비가 자취를 감추기 시작한 게 IMF의 경제제재를 받았을 때부터라는 말이 역설적으로 회자된 적이 있었다. 글쎄다. 어려움이 닥치면 기상천외한 말들이 떠돌기 마련이다. 이럴 때 ‘민심이 흉흉하다’라는 말도 겹친다.

비록 풍자이긴 하지만 허구가 진실을 호도하는 건 슬픈 대목이다. 그 때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이 놀부 심사를 발동하여 제비 다리를 부러뜨리고 깁스를 할지도 모른다고…. 그래서 미리 겁을 먹은 제비가 한국행을 포기한 거라는 말을 우스갯소리로만 치부하기엔 상황이 너무 닮아있었다.

하지만 제비들의 예측은 빗나갔다. 우리는 제비 다리를 깁스하지 않아도 되는 기지를 발휘했다. 제비 다리를 깁스하는 복잡하고 성가신 절차에서 탈피하게 된 것이다. 일주일에 한 번 씩 인생역전의 주인공이 탄생하는 기상천외한 묘책을 개발했다. 그게 로또복권이다.

제비 다리에 깁스해서 날려 보낸다고 그 제비가 행운의 박 씨를 물어다준다는 보장이 있다면야 그 아니 좋으랴마는, 이제 연흥부의 세월은 갔다. 아주 쉽게 푼돈을 투자하고 일주일을 기다리면 인생역전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다. 굳이 제비다리에 깁스를 하는 데 공을 들인다는 건 한참 밑지는 장사다. 로또복권이야말로 제비의 공포를 퇴치한 일등공신이다.

그런데도 제비가 돌아오지 않으니 답답한 노릇이다. 그 연유를 아는 사람 어디 없을까. 세시풍속에 제비는 삼월 삼짇날에 왔다가 구월 한로 절기에 강남으로 간다고 했다. 그 제비가 삼월이 지나고 구월이 다 왔는대도 감감소식이다. 이러다가 영영 제비가 돌아오지 않는 건 아닐지, 걱정이 말이 아니다.

설핏 말하기는 쉽지 않지만 제비가 회귀하지 않을 개연성에 무게가 실리는 게 요즘이다. 무엇 때문에, 왜, 돌아오지 않는지에 대한 명징한 답이 없으니 속이 탄다. 학자들도 대답을 유보하는 현실이 꺼림칙하다.

도심이라서 그럴까. 시골 사는 벗에게 제비 안부를 물었더니 역시 제비가 보이지 않는단다. 허탈했다. 한 젊은이가 이제 다리 부러진 제비에게 깁스를 하는 일은 물 건너갔다며 웃었다. 웃자고 하는 말이지만 막연하게 인생역전에 기대를 거는 풍조가 우리를 슬프게 한다. 행운의 박 씨를 물고 오지 않아도 좋다. 제비가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