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봉우리진 연꽃 모양의 망주석은 과거 무덤의 존재를 알리면서도 무덤의 좌우 간격을 설정하기 위함이었다. 사진은 고한조 무덤의 망주석 모습.

 

무덤에 세우는 석물은 모두가 이유가 있고 그 법식이 따로 있다. 망주석은 표시적 기능이 있으니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여기가 누구누구의 무덤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함이다. 사람들은 이름을 알리기를 좋아하는 데 사람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명예욕 없는 사람은 없다. 조선 시대는 오로지 관직에 올라 높은 벼슬을 꿈꿨고, 그래야만 집안을 일으킬 수 있다는 생각에 시험을 중히 여겼다. 워낙 생산력이 낮고 살기 힘든 일반 백성의 삶을 벗어나는 길은 과거 급제밖에 없다. 벼슬한 사람은 돈과 명예가 주어지기 때문에 가문의 영광으로 삼는다. 그래서 죽은 자는 말이 없지만 살아있는 자손들은 자신의 조상이 훌륭하다는 것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산담을 크게 하고 석물을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어쩌면 산담이나 석물은 죽은 자보다 산 자를 위한 비극적 축제인 셈이다. 죽은 조상의 후광을 업고 자신 또한 그리돼야 한다는 욕망과 자신감에 대한 본보기이기도 한 것이다.    

 

▲망주석=망주석(望柱石)은 석망주(石望柱)라고도 한다. 망주석은 세종시기까지 전죽석(錢竹石)이라 불렀다. 왕릉의 망주석의 구성은 상단부는 원두(圓頭), 연환(連環), 운각(雲角), 염우(廉隅), 혹은 앙연(仰蓮), 중심부의 주신(柱身)은 팔각기둥이고 내면(內面)은 세호(細虎)와 지대석(支臺石)으로 돼 있다. 망주석은 말 그대로 무덤이 있는 곳을 멀리에서도 쉽게 볼 수 있도록 한 표시 기둥이기도 하지만 실제의 기능은 ‘능묘의 조영(造營)시 좌우 간격을 설정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구중회, 2012)


망주석은 상단부 기둥 윗부분에는 봉우리 진 연꽃을 새기고 바로 밑에는 활짝 핀 연꽃과 그 아래에는 구름 문양을 새긴다. 기둥 중간 지점에 세호(細虎·조선초기는 문고리형, 이후 상하 대칭적 신수(神獸), 다람쥐 형상의 神獸) 등을 표현하고 좌상우하(左上右下) 원칙에 따라 좌측의 망주석에는 위로 오르는 세호나 쥐를, 우측의 망주석에는 아래로 내려가는 세호나 쥐를 새긴다. 만일 쥐일 경우 낮을 흰 쥐로, 검은 쥐를 밤으로 보아 ‘예서(禮書)’에서 말하는 좌측은 ‘東·陽(낮)·上’을 의미하며, 우측은 ‘西·陰(밤)·下’를 의미하여 좌측의 쥐는 위로 올라가는 형상을 취하고, 우측의 쥐는 아래로 내려가는 형상을 취하고 있다. 좌우 배치 문제에서 음양론과 불교적 상징으로 볼 때 낮과 밤을 상징하는 쥐를 새긴 것은, 무덤을 찾는 후손들에게 세월이 흘러감, 즉 죽음이 다가옴을 암시하고 있는 것으로써 무덤을 찾는 후손들에게 삶에 열심히 하라는 교훈적 요소가 담겨 있다는 것이다(용인시, 2001).

   
▲ 경기도에 있는 성호 이익 무덤의 망주석으로 연꽃 봉오리 모양이다.

또한 망주석의 세호는 격상의 의미까지 있다고 한다. 연산군의 생모인 폐비 윤씨의 망주석에는 좌우의 세호가 모두 위로 향하는 모습이며 이는 폐비 윤씨에서, 제헌왕후(齊獻王后)로 격상된 까닭에 이렇게 새겨진 것이라고 한다. 그 이후에는 세호가 다양한 위치와 형태로 전해지고 있다(장영훈, 2000).


그러나 세호의 좌우 상승(上昇)이나 좌우하강(下降), 그리고 좌승(昇)우강(降)이라는 원칙은 일정한 법칙이 있었던 것이 아니고 왕릉마다 다르게 나타나므로 특별한 원칙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태조의 건원릉은 구멍이 뚫린 문고리형 세호였다. 이 문고리는 금줄을 쳤던 것이고 짐작되고, 전죽석(錢竹石)이라고 불렸던 것은 능묘의 인부들을 독려하기 위해서 엽전을 걸었던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구중회, 2012)
 
▲제주형 망주석=제주의 망주석인 경우 재료는 다공질 현무암과 조면암질 현무암, 속돌(송이석) 등으로 만들어지며 형태는 비교적 다양하게 나타난다. 높이는 120cm~180cm 정도이며, 기둥머리는 연꽃 봉우리, 종(鐘), 젖가슴, 남성 성기 모양 등 다양하게 변형된 형태들이 있다. 이런 모양들은 원래 연꽃봉우리를 묘사하는 과정에서 망주석을 본 적이 없는 석공이 유림들에게 들은 것을 형상화 하는 과정에서 모방 변형된 것이다. 연꽃 봉오리를 표현하려고 했으나 좀처럼 그 모양을 표현할 수 없어서 종이나 유방, 성기 모양 등의 다른 모습으로 변해버려 제주식 망주석의 전형으로 정착한 것이다.


망주석의 기둥 형태 또한 8각형, 원통형, 6각형, 4각형 등 다양하게 나타나며, 중간에 각진 띠를 두르는 등 세호는 아예 표현하지도 않았다. 망주석의 받침석인 대석(臺石)은 있는 것과 없는 것으로 나눌 수 있고, 그리고 받침돌과 몸통이 함께 붙게 조각한 것 등이 있다. 또 연꽃 봉오리에 해당하는 망주석 머리인 경우 종 모양이나 유방 모양, 모자를 씌운 것처럼 분리해서 조립되어 제작한 경우가 많다. 이는 통돌인 경우 무겁기 때문에 먼 거리를 쉽게 운반하기 위해서 분리된 것이며 세울 때는 다시 조립하게 돼 편리하다. 석물 중 송이석으로 조각된 것들은 송이석이 깎기도 편하지만 현무암이나 조면암보다 가볍기 때문에 운반이 쉽다는 장점이 있다. 고 고흥옥 석공인 경우, 무덤 석물 용 재료인 송이석은 검은 오름 능선에서 채취하여 마차로 운반했다고 한다. 

 

   
▲ 연꽃 봉오리가 변형된 종 모양의 제주형 망주석.

제주도 망주석은 육지의 망주석보다는 단순한 것이 특징이다. 육지의 망주석이 화강석으로 제작된 데 반해 제주의 망주석은 제주도가 화산암 지대에서 캐낸 재료의 특성과 저각 기술의 부족, 도면 없이 들은 말로 제작한 것에 기인하기 떄문이다. 망주석이 있는 경우 거의 문인석이나 동자석이 있지만 망주석만 세운 무덤도 있다. 망주석을 포함한 무덤의 석물이 있는 것은 대체로 벼슬한 집안이라도 재력이 있을 때만 석물을 다양하게 세우는 것이 가능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산담 위에 세운 망주석=망주석은 일반적으로 산담 앞쪽 안쪽에 좌우로 한 쌍 세우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때로 산담 위  좌우로 세우기도 한다. 망주석을 산담 앞쪽 양옆으로 세우는 것으로 보아 이곳이 무덤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함이라는 것을 알 수있다. 산담 위 세우는 말주석은  크기가 작은데 산담의 돌을 들어 망주석을 심어서 쓰러지지 않게 돌을 메꾼다.   

 

▲망주석 대용 입석=어떤 무덤에는 망주석 대용으로 산담 앞쪽 좌우에 자연석 입석을 세워 무덤을 표시한다. 또 어떤 무덤은 산담 사방의 네 방위에 작은 현무암 입석을 세우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