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리더가 마지막에 먹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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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옥 서울과학종합대 초빙교수/논설위원

올 추석에도 어머니와 함께 식탁에 앉을 수 있을까?

어머니가 90세를 넘기면서부터 여름의 무더위가 건네주는 상념이다. 올 여름은 연일 지속되는 폭염 가운데 몇 분의 할머니들이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도 폐렴과 천식으로 사경을 헤맸다. 서귀포에서는 더 이상 가망이 없다는 어머니를 싣고 제주시로 달리던 엠블런스는 절망이었다. ‘눈 감으면 안 된다’고, ‘눈을 떠보라’며 외치던 애끓음이 아직도 목울대의 얼얼함으로 남아 있다.

그 어머니가 올 추석에도 94번째 식탁에 앉으셨다. 음식이 준비되자 아이들이 서둘러서 숟가락을 든다. ‘할머니가 먼저’라고 가르치는 부모들에게 어머니가 손사래를 치신다. “나는 벌써 배가 부르다.” 그렇다. 자식들이 먼저 먹는 것을 바라보는 흐뭇함이야말로 이 세상 모든 어머니들의 한결같은 마음이다.

하지만 일반적인 식탁의 코드는 윗사람이 먼저다. 뷔페식당의 대기 줄에서도 맨 앞은 그 모임의 리더들이 차지한다. 아직까지 우리 사회는 가정에서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조직에서 나이, 직급, 권위와 같은 서열이 식사의 순서를 결정한다. 누가 먼저 숟가락을 드느냐가 조직 내 힘의 세기를 관측할 수 있는 상징이지 않은가.

그런데 미국의 해병대에서는 최하급자가 가장 먼저, 최상급자가 가장 나중에 배식을 받는다.

전략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로 알려진 사이먼 사이넥(Simon Sinek)의 관찰에 의하면 이러한 식당 내의 코드는 결코 명령에 의한 행동이 아니다. 해병대원이라면 그냥 그렇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간단한 행동 속에 리더십을 보는 해병대의 시각이 들어 있다. 해병대에서는 으레 리더가 제일 마지막에 먹는다. 자신의 필요보다 기꺼이 타인의 필요를 우선시 하는 마음가짐이 리더십에 따르는 의무이기 때문이다.

‘리더는 마지막에 먹는다’는 말에 마음과 생각이 머물 즈음, 제주 사회의 매스컴에서는 공무원의 공유지 취득이 논란을 일으키고 있었다. 부끄럽게도 공유지란 지방자치단체와 같은 공공기관이 소유한 토지로만 알고 있었던 우리에게, 그것은 그야말로 충격적인 뉴스였다. 어느 도의원의 의정칼럼에 의하면 수의계약으로 이미 취득된 공유재산은 그 사람들의 재산을 불리며, 고스란히 도민의 세금을 바친 형국이 되고 말았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그들 중에는 공유재산을 공정하게 관리해야 할 공무원들이 상당수 숨어 있다는 사실이다. 공무원이 불공정한 행정으로 재산상 이익을 크게 누린 당사자가 된 셈이다. 행정 절차에 따라 공유재산이 매각공고를 통해 일반 주민에게 알려지는 사이에 뜻있는 공무원들은 이미 내부정보를 통해 수의계약의 고지를 점령할 수 있는 구조니 말이다.

공유지가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대다수 도민들에게는 이 얼마나 황당한 세상인가. ‘행정이란 게 공정함이 없다면 범죄에 가까운 일이고, 이는 행정이 추구해야 할 공익을 훼손하는 중대한 사안’이라는 도의원의 글은 ‘공유재산을 불공정하게 구입한 사람들에겐 아무런 변화가 없다’는 개탄으로 마무리 되고 있다.

경영 컨설턴트인 론다 에이브럼스에 의하면, 세상 사람들이 어려서 어머니로부터 가장 많이 듣는 잔소리가 “깨끗한 속옷을 입어라. 사고라도 당해서 누가 보면 어떻게 할래?”다. 이 말의 속뜻은 아무도 보지 않더라도 옳은 일을 하면 자부심을 가질 수 있으므로 어떠한 경우라도 수치나 창피를 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제주사회에서는 공무원이 가장 큰 리더 집단이다. 리더십이란 특권을 누리려면 사리사욕을 희생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자각해야 한다. 공무원 사회부터 ‘리더는 마지막에 먹는다’는 자세로 거듭나지 않는다면, 제주도의 리더십은 이제 도민들의 마음으로부터 멀어질 태세다. 공무원의 숟가락이 어머니의 마음과 같아지기를 바라는 것은 너무도 꿈같은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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