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未安)과 죄송(罪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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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허자. 광주대각사 주지/제주퇴허자명상원장

문득 새벽잠에서 깨어보니 달빛이 아직도 고요하다.

지난 여름 대한민국 전 국토는 엘니뇨 현상으로 무더운 땡볕과 극심한 가뭄을 겪었다. 사람은 열사병으로 죽고, 농어촌은 어패류들의 폐사와 농작물의 고사(枯死)로 인하여 큰 시름을 앓았다.

인간사가 만만치 않은 것은 사실이나 자고로 ‘궁(窮)하면 통(通)한다’는 말처럼 사람은 누구나 어려우면 무언가에 기대고 싶은 욕구가 있다.

덥다, 덥다 올해만큼 더운 해가 몇 번이나 있었을까만 병신년 올 여름의 혹서(酷暑)는 아마도 최소한 몇 십 년의 기록에 남지 않을까 생각된다.

시간은 흘러 간절했던 가을바람이 분다. 비와 가을바람은 대자연의 섭리이니 인간의 몫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참고 견디면서 기다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요즘 같은 남북 정치권의 극한 대립이나 극단적으로 치닫는 여야정략정치를 바라보면서 느끼는 국민들의 실망감은 지난 무더위 못지않게 짜증나고 힘들다.

국민들의 눈에는 뻔히 보이는데 정치인들은 왜 보지 못하는 것일까? 그들이 쓰고 있는 감투가 너무 커서 눈을 가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가정이나 국가나 서로 타협을 하려면 무엇보다 양보의 미덕이 필요한 법, 내가 원하는 이익을 모두 취하면서 타협이나 협상을 끌어낼 수는 없다. 스스로 조금은 손해를 보는 듯, 한 발자국씩 뒤로 물러날 수 있을 때 협상의 시너지 효과는 기대되는 것이다.

요즘 크게 대두되고 있는 안보문제도 그렇다. 사드(THAAD)를 성주에 꼭 설치해야 한다면 먼저 성주군민들에게 그 취지를 알리고 설명과 협상을 했어야 했다.

무조건 국가대사라는 명분만을 앞세워 밀어붙이는 공권력 행사는 이미 19세기 독제정권의 발상이다. 국민들 앞에 정부의 어리석은 갑질이다. 그것이 통하리라고 생각했던가. 참으로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다. 먼저 죄송하다는 사과를 성주군민들에게 정중히 하고 사드에 대한 충분한 설명과 이해를 구해야 한다. 이런 자세가 국민을 주인으로 섬기는 자세이다.

이왕에 ‘죄송(罪悚)’이라는 말이 나왔으니 요즘 우리 사회에서 갈수록 더디 사용되고 있는 미안(未安)과 죄송(罪悚)에 대해 말해 보고자 한다.

두 말은 모두 다 상대방에게 뭔가 잘못을 했을 때 사과를 하거나 용서를 청할 때 쓰는 말이다.

다만 미안과 죄송은 상대에 따라 가려서 써야하는 말이다. 가령 아들, 딸이 부모에게 잘못을 했을 때는 미안이 아니라 ‘죄송’인 것이며 부모가 자식앞에 잘못이 있을 때는 죄송이 아니라 ‘미안’을 써야 맞는 말이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이 “엄마, 아빠, 미안해”라고 흔히 한다.

그것은 친구들에게나 쓰는 말이다. “엄마 아빠! 죄송해요”가 맞는 말이다.

말은 길들여지는 속성이 있기 때문에 빨리 고치지 않으면 안 된다.

요즘 아이들이 선생님을 ‘쌤’이라고 곧 잘 부른다.

이때도 ‘쌤! 미안해요’라고 하는 소리도 들었었다. 정말 이건 아니다. 속히 고쳐 써야 한다.

왜냐하면 언어는 소통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긴 하지만 그 보다 먼저 언어(言語)는 우리들의 정신문화를 지배하기 때문이다.

이율곡 선생은 일찌기 ‘언로(言路)가 막히면 나라가 망하고 언로가 통하면 나라가 흥한다’고 설파했듯이 특히 언로(말)는 흐름도 중요하거니와 쓰여지는 용어(用語)도 그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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