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00년대 관덕정 앞 광장에서 열렸던 도내 최초의 시장인 성안장 풍경. 장이 서는 날은 축제와 같은 분위기가 연출됐다.

제주에서의 시장, 즉 오일장은 1906년 윤원구 제주군수가 물자 유통을 원활히 하기 위해 제주읍내 성안장을 시작으로 이호, 외도, 애월, 삼양, 조천, 김녕, 세화, 서귀포 등 9개 지역에서 개설한 것이 효시가 됐다.

장날은 1·6일, 2·7일, 3·8일, 4·9일, 5·10일 주기로 지역 간에 중복되지 않도록 조정했다.

장날이면 농가에서 생산된 모든 잉여물이 집결했다. 농민들은 직접 생산한 잉여물을 팔고, 고무신과 의복, 옷감, 소금 등을 구입했다. 주요 고객은 대부분 여성이었다.

오일장은 정보가 소통되는 말 그대로 트인 ‘장(場)’이었다. 교통이 원활하지 못했던 시절 대부분의 정보는 주로 시장에서 교환됐다. 농사 정보나 물가 시세, 민심은 물론 혼사 문제가 오가기도 했다.

1930년대 오일장에서 거래된 품목은 쌀·보리·콩·팥·밀가루 등 농산물과 소고기·돼지고기·닭고기 등 축산물 된장·간장·설탕·석유·달걀·명태를 비롯해 숯·성냥·면화·한지·청주·맥주·소주·사이다 등 다양했다.

1929년 총독부의 생활상태조사를 보면 제주읍 성안장은 상인 400명, 1일 평균 구매고객 1300명이었다. 연간 매출액은 21만3900원이었다.

연 매출액이 20만원이 넘는 오일장은 성안장 한 곳뿐이었고, 한림·애월·조천 오일장은 10만원 안팎이었다.

한편 제주성안에는 오일장이 들어서기 이전부터 물건을 파는 마을이 자생해 있었다. 산지천 내팍골 초신집은 짚신을 짜서 팔았고, 검정목골은 가죽제품을 취급했다.

남문에서 서문에 이르는 성굽길은 땔감과 솔잎을, 서문 밖 마을은 돼지고기와 해산물, 서문 안 마을은 채소류와 숯을 팔았다. 산지천 하류 건입포 마을에선 어물을 판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