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가을 스토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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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길주. 수필가

지난 여름의 더위는 많은 상흔을 남겼다. 타들어가는 대지에 뿌리를 내린 풀포기들은 메말라 스러지고. 토심이 얕은 척박한 밭의 곡식이나 채소들은 농부의 마음까지 쥐어짰다.

나무나 과수들도 매 한가지. 잎·줄기나 열매가 자라지 못하는 건 둘째 치고, 통째로 말라죽을 판에도 하늘만 원망할밖에. 농작물만의 피해도 아니었다. 사육하는 동물들이나 바다에서 양식하는 고기들도 떼죽음 당하고, 온열환자 수도 그 기록을 연일 갈아치웠다.

하지만 지구는 탄생 이래 단 한 번도 동일한 날씨를 반복하지 않았다니 지난 여름의 폭염도 이미 지나간 수많은 여름의 하나일 뿐이다. 자연현상은 우리의 바람과는 무관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해준 셈. 속 태우며 보낸 지난 여름이 허망할 따름이다.

악몽 같던 8월이 셈을 끝낸 대지에는 이제 9월이 들어서 가을의 역사(役事)를 꾸며간다. 어느 시인의 시구처럼 ‘우리 사랑도 강물처럼 익어가는’ 시절이다. 마음부터 편안해진다. 사소한 삶의 희비 앞에 평상심을 잃었던 어리석음이나 아픈 추억의 잔상들도 생의 한 켜에 수납해 버린다.

‘이런 선선한 가을만 계속되면 얼마나 좋을까?’ 잠시 즐거운 상상의 여유도 부려본다.

그러나 쳇바퀴 돌리는 기분, 식상하다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올 듯하다. 여름과 겨울의 혹독한 날씨를 겪어야 봄가을의 포근하고 선선한 날씨도 선망의 대상이 되는 것이라며. 혹한이나 혹서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지혜가 필요함이다.

혼란스런 자연 현상이나 어지러운 사회 갈등 탓에 시대의 삶은 녹녹치 않다.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할지…. 불안에 갇힌 삶들. 참과 거짓이 혼란스럽게 뒤엉키고, 순수함보다는 가식과 허세가 판을 친다. 끼리끼리 휩쓸리는 경박함에 매몰돼버린 사회. 내면에 귀 기울이기보다는 시대의 소음에 장단을 맞추고, 집단적 선동이나 포퓰리즘에 일희일비한다.

한낱 파고일 뿐이지만 그런 파고가 잦아들어야 비로소 성숙한 시민사회가 되는 것이다. 사회상은 우리의 표상이니 얼마나 부끄러운 자화상인가.

외형적인 삶보다는 내면을 중시하고, 시류나 겉치레의 유혹에서 자유로울 때 결혼이나 출산, 효도와 같은 삶의 본령을 존중하게 된다. 혼자서도 행복을 구가할 줄 아는, 비로소 성숙한 시민이 되는 것이다. 호기심이나 창조성, 도전이나 경쟁 같은 삶의 역동성이 존중되고, 개성적이며 독창적인 삶의 방식을 택해야 떳떳해진다. 그것들이 사회 발전의 동인(動因)으로 작용하여 경제도 살아나게 되고.

소슬바람이 가로수의 엽록소를 지워내고 갈빛을 들인다. 손에 잡힐 듯 주위를 물들여가는 단풍들. 머잖아 만상이 타오를 기세다. 가을은 인간의 노마디즘(Nomadism)을 자극하고. 마음은 벌써 더 찬란한(?) 저 가을을 그리워하며 산과 계곡을 넘어 하늘 길, 물길에서 서성인다. 이런 때, 대열에서 벗어나 나만의 가을 즐기기는 어떨까. 우리 인생은 그 누구도 가보지 않은 전인미답, 저마다 저다운 인생 스토리를 엮어가야 할 테니. 나만의 가을나기로 이 가을의 정취를 내 생의 한 켜에 독특하게 그려볼 일이다.

남 따라 가는 게 아니라 내 길을 찾아서가는, 화려한 눈치레보다는 내면의 풍요를 추구하는 그런 가을나기. ‘하늘 아래 가을의 작은 나뭇잎 이상 위대한 것은 없다’고 한 장자의 말처럼 하찮은 것도 의미를 부여하면 위대해지는 것. 환상 속의 저 찬란한(?) 가을을 찾아 떠도느니 지금 눈앞에 펼쳐진 이 가을에 의미를 부여하며 나만의 가을 스토리를 엮어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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