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낭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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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진 제주학생문화원장, 동화작가>

“비밀을 가르쳐 줄게 아주 간단해. 우리가 여기 보이는 것은 모두 껍데기에 지나지 않아.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거든. 오직 마음으로 보아야 정말 중요한 것이 보인다는 거지.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생떽쥐베리가 쓴 어린왕자에서 여우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다. 난 지난 추석연휴에 어린 왕자를 다시 읽었고 오라 메밀꽃들판을 거닐며 제주 대자연과 마주한 적이 있었다. 어린왕자를 한 번 쯤 읽어보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으랴만 어린왕자가 일곱 번째 별인 지구에서 여우와 나눈 대화 내용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읽은 책을 다시 읽는다면 아마 혹자는 그렇게 할 일이 없느냐고 비아냥거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정말 중요한 것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을까하는 의구심에서 난 비아냥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삶의 현상과 본질을 바로 알고 파악하기 위해서는 시간을 낭비(?)하면서 성찰할 수밖에 없기에 하는 말이다.


시간을 낭비하라!


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최근 구글 딥마인드가 개발한 인공지능(AI) 알파고가 인간과의 바둑대결에서 승리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온 세계가 충격에 휩싸였던 적이 있다. 바야흐로 인공지능시대가 열린 것이다. 인공지능시대에 우리에게 필요한 건 무엇일까? 한번쯤 반문하면서 곱씹어봄도 좋을 듯하다.


그렇다. 인공지능시대에 인간들은 진정 감성과 창의성, 인성 등을 제대로 함양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이러한 것들은 아마 시간을 낭비하면서 들판을 거닐고 작은 것들을 자세히 들여다보아야 기를 수 있는 능력들이다.


이젠 생활계획표에 의해 시간을 아껴가며 공부를 해서는 안 될지도 모른다.
서적에 쓰여 있는 지식만으로는 적응이 불가능한 시대에 살고 있으니 시간을 아껴가며 계획대로 공부하고 숙제를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인도네시아 숲속에서 자라는 자바오이 씨앗 모양에서 영감을 얻고 스텔스폭격기를 만들 듯 우리 아이들을 이제 숲속으로 내 몰아야 한다. 주위를 돌아보게 해야 하고 눈앞의 난생 처음 보는 꽃과 하늘과 바람을 느끼게 해야 한다.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지금 옆에 있는 사람과 그윽하게 눈을 마주할 일이며 작은 이슬을 온 몸으로 받아들이며 가냘픈 생을 이어가고 있는 야생화와도 마주할 일이다. 그럴 때 비로소 우주가 보일 것이며 자신의 정체성을 들여다보는 혜안이 생길 것이다.


우리 기성세대는 시간을 절약하며 공부하고 성공을 위해 몸부림쳤었다. 그러나 이젠 아니다. 우리가 소중히 여기던 것은 여우가 말하는 껍데기에 불과한 것이었다.
어린왕자가 일곱 개의 별에서 찾아낸 건 바로 자기별에서 길들인 장미꽃에 대한 사랑이요 자아 성찰이 아닐까?


이 가을 시간을 낭비하자. 책장에 있던 오랜 인문학 서적들을 잠에서 깨어나게 하고 광활한 제주들판으로 달려 나가 작은 것들과도 마주함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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