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부의 창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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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종 서귀포지사장 겸 논설위원
‘머리를 감으면 갓의 먼지를 털어서 쓰고, 몸을 씻으면 옷의 먼지를 털어서 입는다. 깨끗한 몸으로 더러운 것을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차라리 상강에 뛰어들어 물고기 밥이 되는 게 낫다’

초나라 대신 굴원이 정계에서 쫓겨나 강변을 걷다가 그 이유를 묻는 어부에게 대쪽 같은 기개와 고고한 선비 정신을 드러낸다.

그러자 어부는 살며시 웃으며 “창랑의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고(滄浪之水淸兮 可以濯吾纓, 창랑지수청혜 가이탁오영), 창랑의 물이 흐리면 발을 씻으면 된다(滄浪之水濁兮 可以濯吾足, 창랑지수탁혜 가이탁오족).”고 화답한다.

중국 전국시대 초나라의 정치가이자 시인 굴원(屈原)의 시 ‘어부사’에 나오는 명구(名句)다

▲신영복 선생은 어부사는 현실과 타협하지 않으면서 현실의 변화에 지혜롭게 대응하는 ‘지혜로운 현실주의’에 대한 굴원의 반성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나아가 ‘현실과 이상의 지혜로운 조화’를 이야기하며 현실과 이상의 갈등은 ‘인생의 영원한 주제’라고 강조한다.

그리고 우리의 현실은 매우 경직돼 있으며 진보와 보수, 좌와 우, 현실과 이상이 조화와 지양의 의미로 만나지 못하고 적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해임결의안으로 인해 여야가 벼랑 끝 대치를 하고 있다.

20대 국회의 첫 국정감사는 파행을 계속하고 있고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는 정세균 국회의장의 사퇴를 요구하며 단식에 들어갔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 대표는 “정세균이 물러나든지 내가 죽든지 둘 중의 하나”라며 초강경 자세다.

정 의장은 새누리당의 사퇴 요구를 일축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당분간 꽉 막힌 정국을 풀 해법이 나올 것 같지 않다.

이번 여야의 대치 정국은 신영복 선생의 지적하는 현실과 이상, 진보와 보수, 좌와 우의 적대는 결코 아니다.

여소야대 국회에서 과반 의석을 차지한 야당의 힘 과시, 그리고 더 이상 힘겨루기에서 밀리면 안 된다는 여당의 처절한 몸부림일 뿐이다.

정치의 기본은 타협과 협상이라는 데 20대 국회는 시작부터 싸움질이다.

▲“세상이 다 혼탁한데 나 혼자만 맑고, 모든 이가 다 취해있는데 나 혼자만 깨어 있어 쫓겨났다”는 굴원의 고고한 정신은 충분히 존경 받을 만하다.

하지만 너 죽고 나 살자는 식으로 싸우는 국회를 보노라면 비타협적이며 원칙적인 굴원보다 ‘창랑가’를 부르며 유연성을 내보인 어부가 더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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