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흔 살의 ‘행복한 동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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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동행, 길을 같이 가는 것, 같이 가는 사람이란 말이다. 신앙이나 수행을 같이하는 사람, 그늘진 곳에서 힘겹게 사는 이웃을 돕는 일을 뜻하기도 한다.

입에 내놓아 화두 삼기는 쉬우나 실천은 어렵다. 의기투합하지 않고는 안되기 때문이다. 고귀한 가치 실현의 길, 그래서 동행이고 동도(同道)다.

며칠 전, 나는 잠시 ‘행복한 동행’의 길목에 있었다.

먼 시간 속 세월의 강을 타고 노 저어 흐르며 아뜩한 회상에 잠겼다.

메종글래드제주에서 열린 ‘은사와 함께, 동문과 함께’라 한 오현고 14기 졸업50주년 기념 자축의 밤 행사. 1966년 졸업생들이 노년에 벌인 축제한마당이다.

“흐뭇하고 또 흐뭇합니다.”

고봉식 당시 교장선생님의 격려사 첫 마디가 만단(萬端) 의 감회를 함축했다.

“학창시절 맺어진 우정은 영원합니다. 순수하고 아름답습니다. 우리는 이런 힘을 바탕으로 은사님들을 모시고 부부와 함께 친구들 손잡고 행복한 동행의 길, 졸업50주년기념행사를 치르고 있습니다. 지난 시간만큼 보고 싶다는 간절함으로 마음을 열고 정말 편하게 만나기를 염원합니다. 이 모임에 나올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건강이 좋잖아 참석하지 못한 사람도 많습니다. 이미 고인이 돼 나올 수 없는 동창, 그런 동창들은 앞으로 점점 더 늘어날 것입니다. 그래서 동창은 반가워도 세월은 슬픕니다.”

김종천 회장(전 중앙고 교장)의 인사말에 모임의 의미가 녹아 있다.

고교 졸업 반세기. 어간에 쌓인 사연이며 엮고 굴곡진 대목도 수두룩할 것인데, 변했거니 일흔 살, 저마다 머리에 허옇게 쓴 초가을 무서리다.

‘한데 버무려져 3년을/ 세상 향하여 날갯짓을 배우고/ 그날 그때 한 창문으로 일제히 비상을 했다는 것/ 훌쩍 50년이 지났구나! (중략)/ 그 삶 짊어지고/ 같은 날 같은 시 같은 곳으로 모여드는/ 어쩔 수 없는 본능’ 졸업생 김성주 시인의 축시에 젖었더니, 주름져도 웃음은 홍안인 그들을 대하면서 눈빛만으로 가슴 벅찼다.

돌이키니, 그들과 처음 만난 게 1965년의 일.

2학기 수업을 한 짧은 연(緣)이나, 그때 고3이던 그들과의 만남은 시간의 무게만큼 설렜다.

20대 초반이던 내게 첫 경험 같은, 그것을 어찌 우연이라 하랴.

반세기만의 만남에 가슴 벌름거렸다. 그들이 이제 일흔이었다. 언뜻 생각거니, 나와 나이 어금버금하게 늙는구나!

회지에 글 한 편을 올렸다.

“종심(從心)의 문턱이군요. 이제 살아온 인생을 관조하며 여생을 유의미(有意味)하게 보내야 할 계제(階梯)입니다. 나는 요즘 시답잖은 글줄이라고 쓰며 지냅니다. 오래전부터 신문에 글을 써 오다, 근간 제주新보 ‘안경 너머 세상’에 칼럼을 올리고 있지요. 매주 금요일, 월 4회입니다. 거지반 세상과 통섭하며 살아가는 소재예요. 소한(消閑) 거리로 읽고 응원도 보내주세요. 신문에서나마 만나기를 기대합니다.”

부부 동반으로 꽉 메운 자리가 넘실대는데, 1억 7000만원에 이른 협찬이 놀랍다.

언뜻 전통의 뿌리를 생각게 하는, 탄탄한 그들 모교의 저력이었다.

일흔 살의 행복한 동행.

‘친구야! 함께 웃고 같이 걷자’, 고등학교 졸업50년 행사는 여직 처음이라 그런가. 잠자리까지 좇아와 천장 가득 메운 그 열기에 잠 설쳤지만,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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