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집을 바라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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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영식 수필가

날씨가 화창한 어느 봄날, 1년 동안 공들여 키워온 천혜향을 수확하고 있었다. 며칠 전부터 까치 한 쌍이 집 주위를 배회하더니 오늘 아침엔 나뭇가지를 물어다가 와싱톤 야자수에 집을 짓기 시작했다.


30년 전 주유소 건물을 지으며 기념으로 울타리에 5년생 와싱톤야자수와 개먼나무를 심었다. 야자수는 키가 워낙 빨리 자라서 집 울타리에 심으면 몇 년 뒤에는 남국의 정취를 물씬 풍겨주고, 병충해에도 강한 개먼나무는 집 양쪽에 한 그루 씩 심어 세상살이의 지킴목이 되어 달라는 뜻으로 심었다.


이제 세월이 흘러 30년이 되고 보니 내 키보다도 작았던 야자수는 몸집도 커지고 2층 옥상보다 더 높게 자랐다. 아침마다 주유를 하며 큰 키를 올려다보는 즐거움도 솔솔 하다. 개먼나무는 해마다 꽃피고 빨간 열매를 맺으니 주유하러 온 손님들이 차에서 내려 기념 촬영을 즐기기도 한다. 나무 가지는 이름 모르는 철새들의 쉼터가 되기도 하고 오뉴월까지 달려 있는 열매는 배고픈 새들의 먹이가 된다.


사람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키가 작아지지만, 나무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자라며 갈수록 그 품격을 더해간다. 아이들의 방 가까이에서 함께 커 왔으나 자식들은 모두가 장성하여 집을 나가 살고 있다. 아이들이 어릴 때 모진 비바람과 눈보라도 옆에서 묵묵히 지켜 주었던 나무들이다.


이런 나무에 까치가 찾아와 종족 번식을 하려고 둥지를 틀고 있다니…. 옛날에는 아침에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손님이 온다고 하여 길조로 여겨왔으나, 요즘은 하우스 비닐 천정에 예리한 발톱으로 구멍을 내어 농사에 피해를 주는 바람에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었다. 까치는 쳐다만 봐도 미운 마음이 들어 당장 철거를 해야겠다고 작심하고 있었다. 


까치집을 바라보며 한창 고민을 하고 있는데 며느리에게서 전화가 왔다. 한 달에 몇 번씩 걸려오는 문안 전화려니 했는데 유난히 목소리가 밝았다.


“아버님, 저 임신했어요.”


뜻밖의 희소식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한참 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


“그래, 축하한다. 몸조심해라.”


그 말을 겨우 하고 전화를 끊었다. 늦게 결혼하여 4년이 넘어가도 아이 소식이 없어서 은근히 걱정을 하고 있었다. 3년 동안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으나, 주위에서 직장을 다니면 스트레스를 받아 임신이 어렵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던 모양이다. 또 해가 갈수록 나이도 많아지니 조바심이 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요즘 국가에서도 인구가 감소하여 출산을 장려하고 있지만, 갈수록 아기 울음소리가 듣기 어려우니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집안이 번창하려면 자손이 많아야 하고, 강대국이 되려면 인구가 많아야 한다는데….  


지난겨울 조심스럽게 아이들에게 직장을 좀 쉬면 어떻겠느냐는 말을 꺼냈었다. 아들 내외도 안간힘을 쓰고 있는 눈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런 낭보가 날아들었으니 조금만 더 참고 기다릴 것을 하는 아쉬움만 남는다. 그 말을 듣고 마음고생이 얼마나 많았을까. 하루 종일 이런 저런 생각으로 일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까치는 2,3일이 지나자 이미 집을 다 지어 마무리 단계인 듯했다. 문득 저렇게 열심히 집을 지어 둥지를 트는데 철거해 버리면 얼마나 나를 원망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동안 고민을 하다가 결국 까치집 철거를 포기하고 함께 살기로 했다.


그렇게 결정을 하고 난 후 밤에 큰 비가 오거나 강한 바람이 부는 날에는 까치집이 걱정되어 밤잠을 설치곤 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우선 까치집부터 점검을 하며 하루 일과를 시작하곤 했다. 이제 모두 다 무사히 부화하여 넓은 세상을 향해 날아갔다. 지금은 어느 하늘 아래에서 잘 살고 있는지….


며느리도 추석 때 출산 예정이라 휴직을 하고 고향에 내려와 있다. 오늘 아침도 야자수 가지에 두고 간 까치집를 올려다보며 손자 볼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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