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만’의 실체
‘이번만’의 실체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장원국 제주테크노파크 행정지원실장/논설위원

‘늑대와 양치기’ 이야기는 자주 접하는 대표적 이솝우화이다. 평온한 들녘의 양치기가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늑대가 나타났다”고 거짓으로 외쳐댄다. 이를 들은 마을 사람들이 하나 둘씩 도움을 주고자 달려온다. 이를 본 양치기는 희열을 느끼며 또다시 거짓 외침을 하였고, 선량한 마을 사람들이 다시 구조를 위해 모여든다. 역시 허탕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정말로 늑대가 나타나 양들을 공격하자, 양치기는 진정 목청껏 “늑대가 나타났다”고 아우성 친다. 하지만 이젠 때가 늦었다. 신뢰를 얻지 못한 양치기의 외침에 마을 사람들은 아무도 귀기울이지 않게 된다. 결과적으로 애꿎은 양들은 탐욕스런 늑대의 희생양이 되고 만다.

우리가 자라면서 수차례 들었고, 어른이 되어서는 아이들에게 수차례 들려 주었던 이야기다. 들으면서 그리고 들려주면서 이 우화의 교훈에 아무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거짓말을 해서는 않되겠구나’라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고 그렇게 받아 들이리라 생각했다.

‘거짓말을 하지말자’라는 교훈이 아닌 것은 아니지만, 이 우화의 진정한 교훈은 신뢰를 말할 수 있는 기회는 세 번뿐이라고 필자는 주장하고 싶다. 첫 번째는 부지(不知)나 오인(誤認)에서 기인한 잘못이 있을 수 있다. 두 번째는 그야말로 실수를 저지를 수도 있다. 세 번째는 부지나 오인이나, 실수로 변명되지 않는다. 더 이상의 부지·오인·실수는 신뢰를 형성하기에는 한계를 벗어났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고등학교 때의 일이다. 중간고사가 한창이었다. 몇 교시 시험을 치르고 복도에서는 정답을 맞춰보는 친구들의 긴장감이 팽팽한 상황이다. 한 친구가 “아 이거 실수로 틀렸네”라며 머리를 쥐어 뜯는다. 옆에 있던 친구도 맞장구를 치며, “문제가 좀 치사하구만”이라며 거든다. 그때였다. 1, 2등을 놓치지 않던 친구가 “난 이 문제를 맞추기 위해 모든 문제집을 다 풀어가며 준비를 했다. 실수를 하지 않는 것도 실력이지.” 난 순간 시쳇말로 멍때림으로 당황을 감출 수가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친구의 말이 백번 옳다고 되뇌인다. 실수하지 않으려고 연습을 하고 고생을 한 것이고, 몰라서가 아니라 그리고 잘못 알아서가 아니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인 그 친구의 정성에 경의를 표한다. 그리고 내게 그런 교훈을 준 친구에게 감사한다.

양치기 이야기처럼 거짓이 신뢰를 만들지 못하는 경우는, 정치권에서 흔히 보게 되는 일이다. 사례가 너무 많아 예를 들기조차 어렵다. 거짓인지 진정인지의 구분이 되지 않는 경우도 다반사이다. 소위 위정자들은 ‘늑대와 양치기’의 우화를 진정으로 탐독해야 할 일이다. 그럼으로써 선량한 국민을 더 이상 희생양으로 삼지 말아야 한다.

실수하지 않은 내 친구의 사례는 행정에서 자주 접할 수 있다. 예견된 사안에 대한 대비는 게으르고, 핑계 대기에 급급하다. 시간이 예정되어 있기에 대응 시점도 윤곽이 있다. 시험을 앞둔 학생들처럼 말이다. 사전에 노력을 기울이므로써 실수나 오류를 방지할 수 있음에도, 늘 사후약방문이 되거나 졸속 대응으로 그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예방이 치유보다 경제적이며, 효율적이고 무엇보다 신뢰를 준다는 것을 되새겨 볼 일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기회를 기회로 알지 못하는 경우가 흔하다. 실수하지 않을 기회, 오해하지 않을 기회, 막을 수 있는 기회 등등 수많은 기회를 잃고 또 잃는다. 의도적이든 의도적이지 않던 간에 기회의 상실로 인한 대가를 항상 치르게 된다.

흔히 우리는 ‘이번만’이라는 표현을 거리낌없이 사용한다. “이번만 도와줘.”, “이번만 해볼게.”, “이번이 마지막이야.” 그러나 이번만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누구나 다 알고 있다. 듣는 사람도 말하는 사람도. 그럼에도 우리는 ‘이번만’을 하염없이 외쳐된다. 마치 양치기의 ‘늑대가 나타났다’처럼 말이다. 신뢰는 잃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