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오게네스의 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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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봉. 환경운동가/수필가

오 선배와 친분을 맺은 지 20년이 다 되어 간다. 그는 괴짜다.

전통 어선 테우를 타고 제주 바다를 한 바퀴 돌더니 제주해협을 건너 육지까지 다녀왔다.

당시에 언론에서도 보도되었듯이 떠들썩했었다.

가끔 오 선배가 사는 곳을 다녀온다. 갈 때마다 다른 모습, 다른 일을 시도하느라 분주한 모습이었다.

몇 년 전에는 하수구로 사용하는 커다란 통을 이용하여 숙박시설을 만든다고 분주했다.

통 하나에 50여 만원을 주고 구입하여 전기 시설과 문을 달고 하니 다섯 개에 수백만 원을 투자했다고 한다.

오 선배는 ‘충·효·우’를 중히 여기는 사람이다.

그가 정한 숙박료가 매력적이다. 부모님이나 은사께, 또는 친구에게 편지를 쓰면 오 선배가 우푯값도 부담하여 편지를 보내주거나 타임캡슐에 보관해 준다.

그 ‘편지가 숙박료’라 한다. 사실상 숙박료는 무료라는 것이다.

예전에는 가족이나, 무전여행자 또 남녀를 불문하고 다 손님으로 받았다.

요즘은 실직자, 취직을 못해 고민인 자, 실연했거나 마음이 괴로운 남성만 받는다고 했다.

옆에서 깔깔대며 웃는 소리에 괴로운 사람이 더 속상해할 것 같아서 그렇게 정했다고 한다.

상담을 해주기도 하고, 때로는 자신이 먹는 저녁상에 숟가락 하나 더 얹어 놓고 저녁까지 함께하며 베푼다.

오 선배가 추석 연휴 전날 집으로 찾아왔다.

이런저런 봉사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 헤어졌다.

늘 많은 시간을 함께하지 못해 아쉬운 사람이다.

오래도록 이야기 나누고 싶은 사람, 봉사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알고 즐기며 사는 사람, 선배 같은 사람이 많았으면 하는 생각을 하게 하는 그다.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나라를 걱정하고, 효를 실천해야 올곧은 사회가 된다 하고, 우정을 중히 하여 사람 사이의 우애로운 삶을 꿈꾸는 그.

선배를 보면 디오게네스와 그가 지내던 둥근 나무통이 떠오른다.

내면에서 찾는 자유와 행복, 그리고 철학이 있는 인생을 살며 혁파하려 한다.

악과 타협하지 않거나 열정적인 삶과 과단성까지도 닮았다.

‘충·효·우’를 몸소 실천하고 유도하는 것은 디오게네스와 달라도 도덕적인 면은 합치한다는 뜻이다.

서예 동호회원으로 선배를 알기 시작했을 때, 선배는 실직과 법적 싸움의 혼돈 속에 이혼까지 했다.

많은 괴로움을 안고 용수 저수지 옆 외딴집을 빌려 홀로 생활을 시작했다.

실의에 빠지지 않으려 인근 초등학교에서 봉사로 서예를 가르치며 이겨 나갔다.

자신이 겪은 고통을 생각하며, 고통 받는 사람에게 멘토가 되어 주려는 마음으로 자신을 다스렸다.

사람이 살아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욕심 채우기에 급급한 자, 베푸는 착한 손을 가진 자, 옳은 고집을 가진 자….

나는 어떤 사람인지 곰곰 생각해 본다. 그리고 오 선배처럼 살아야겠다고 다짐한다.

선배에게 ‘디오게네스의 통’ 제작법을 배우기로 했다.

서쪽 마을선 선배가, 동쪽에선 내가 흔치 않은 색다른 모습으로 세상에 나서면 어떨지.

디오게네스가 스스로 자신을 개라고 했듯이 우리도 그래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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