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有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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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돈.제주테크노파크 수석연구원/논설위원

흔히 도토리가 열리는 졸참나무, 갈참나무, 굴참나무, 신갈나무, 떡갈나무 그리고 상수리나무를 한데 묶어 참나무라고 합니다.

상수리나무가 집안 이름, 즉 참나무에서 좀 다른 이름을 갖게 된 데에는 나름의 사연이 있습니다.

상수리나무의 원래 이름은 ‘토리’였습니다. 임진왜란 때 의주로 피난 간 선조는 제대로 먹을 음식이 없자 토리나무의 열매인 토리로 만든 묵을 먹었습니다. 묵 맛에 빠진 선조는 왜란이 끝나고 궁에 돌아온 뒤에도 토리로 만든 묵인 도토리묵을 즐겨 찾았습니다. 그래서 상시 수라상에 오르게 돼 ‘상수라’가 됐다가 ‘상수리’로 불리게 됐습니다. 도토리는 떡갈나무의 열매를 가리키는 단어였지만 오늘날 도토리는 참나무속 나무의 열매를 통칭하는 표현이 됐습니다.

가을철 산에 오르다보면 재미 삼아 바닥에 떨어진 도토리를 줍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예 자루를 들고 나선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만큼 참나무는 해마다 많은 양의 도토리를 만들어 낸다고 합니다. 얼마나 많은가 하면 풍년인 해는 성숙한 참나무 한 그루에서 1만개가 넘는 도토리를 만들고 흉년인 해에도 최소 300~400개의 도토리를 만든다고 합니다. 참나무는 왜 이렇게 많은 양의 열매를 만드는 것일까요.

참나무가 만드는 도토리는 몸집이 통실해 바람을 타지도 못하고 나무 아래로 굴러 떨어집니다. 그러나 도토리를 주로 먹는 다람쥐는 도토리를 입에 물고 좁게는 수십m에서 수km까지 이동할 수 있고, 참나무가 자라는 곳보다 더 높은 고지대에도 갑니다. 이어 겨울철 식량을 저축하기 위해 도토리를 땅속에 묻습니다. 그런데 다람쥐는 머리가 나빠 자신이 어디에 도토리를 묻었는지 기억하지 못합니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다람쥐는 땅에 묻은 도토리의 95% 이상을 찾아내지 못한다고 합니다. 결국 땅에 묻힌 도토리는 싹을 틔웁니다. 다람쥐의 건망증으로 새로운 숲이 만들어지는 것이지요. 다람쥐의 건망증이 아니었다면 무성한 숲이 만들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안나 게르만의 ‘가을의 노래’를 들으며 수목원 길을 걷습니다.

지난여름, 그토록 맹렬했던 폭염 속에서도 꿋꿋하게 푸름을 자랑하던 나뭇잎들이 하나둘 노랗게 물들어 갑니다. 이제 얼마 없으면 하나 둘씩 바람에 떨어질 것입니다.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며 우리네 인생도 언젠가는 본래의 고향으로 되돌아 가야함을 자연으로부터 깨닫게 됩니다.

법정 스님이 말했듯이 ‘가을은 참 이상한 계절입니다’.

시름시름 앓고 있는 나무를 바라볼 때 나는 새삼 착해지려고 합니다. 나뭇잎처럼 내 마음도 엷은 우수에 물들어 갑니다. 지금은 어느 하늘 아래서 무슨 일을 하고 있을까하고, 멀리 떠난 친구의 안부가 궁금해집니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대중가요를 들으며 속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가사 하나에도 곧잘 귀를 기울이곤 합니다. 가을은 마법 같은 그런 계절인 모양입니다.

가을은 결실의 계절이지만 이별을 예고하는 계절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가을은 우리에게 겸손을 배우게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은 가지지 못한 사람이 아니라 가졌으면서 베풀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신께서 재물과 재능을 주셨음에도 그것을 올바르게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그 재물과 재능이 오히려 삶의 장애가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가질 수 없는 것을 바라지 말고 이미 가진 것을 즐길 수 있을 때 삶은 더욱 풍요로워질 것입니다. 가을이 가기 전에, 낙엽이 지기 전에 나에게 주어진 사소한 것에 감사하며, 겸손한 마음으로 이웃과 함께할 때, 행복과 풍요가 찾아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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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자 2020-09-23 16:43:56
상수리의 뜻을 제대로 인지하는 글이었으며 도토리묵의 사연을 읽으니 짠하네요~ 조상들의 노고에 감사합니다. 시절인연도 중요하고 옛 친구들이 보고 싶은 만큼 모든 것들이 아름답게 미화되는 나이에 접어들어서 작가님의 글이 함축되어 담아지네요. 감사합니다~^^♡ 간절기에 건강 조심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