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맛 같은
꿀맛 같은
  • 제주신보
  • 승인 2016.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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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희 / 수필가

아침부터 과일트럭에서 스피커로 불러댄다. “꿀수박, 꿀참외, 꿀자두….” 그러다 꿀토마토라 외친다. 꿀토마토라니. 어이없어 피식 웃다가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얼핏 스쳤다.
 

흔히 맛있다는 최고의 표현으로 ‘꿀맛 같다.’ 고 한다. 요즈음 과일은 웬만하면 꿀

자가 붙는다. 그렇지 않으면 과일 대접을 받을 수 없는 시절이다. 품질의 잣대를 당도에 맞추고 유기농법으로 소비자의 입맛을 맞추는 시대가 됐다. 소비자들도 꿀이라는 매력에 손이 먼저 간다.    
 

그만큼 강하고 자극적인 입맛으로 변해 길들여졌다. 당도가 조금만 떨어져도 심심해 맛이 없다고 한다. 성인병의 주범이라는 단맛은 어느새 식습관에 깊숙이 자리했다. 조리한 음식도 달착지근해야 맛있다 하고, 그렇게 길들여져 결국 중독되다시피 탐하게 된다.      
 

이제는 옛 과일을 찾기 어렵다. 한마디로 개성을 잃은, 애초의 본맛을 잃어버린 변이종이랄까. 예전의 과일이나 채소는 독특한 자신만의 향기와 체취가 있었다. 땅에서 길어 올린 수액으로 저만의 맛을 품어 키웠다. 쌉쌀하거나 아리거나 달콤하게 성숙한 한 알의 과일이 되고 한 뿌리의 푸성귀가 태어났다. 햇빛과 바람, 비가 키워낸 자연의 맛이었다.  
 

최근 신품종으로 개발된 과일옥수수란 걸 먹어 봤다. 과일옥수수로 상표등록까지 했단다. 쪄서는 물론 날것으로 과일처럼 먹을 수 있다기에 혹했다. 귤보다 당도가 높다 하더니 과연 알갱이가 부드럽게 터지면서 어느 과일 못지않게 달았다.
 

이걸 옥수수라고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토종 옥수수는 자루가 짧다.  노르스름한 알갱이와 보라색 알갱이가 한 자루에 섞여 열렸던 옥수수. 구수하고 담백하며 차진 맛도 없고 옥수수라고 하기엔 너무 달았다. 하루 다르게 발전하는 농업기술이 먹거리 문화를 좌지우지하는 세상이 됐다.
 

꿀이란 걸 쉽게 접하기 어려웠지만 설탕도 귀했던 시절이다. 잘 익었다 해도   수박이나 참외는 밍밍해 심심했다. 반으로 쩍 갈라 논 과육에 설탕을 흩뿌리듯 뿌려 먹었던 것을 꿀맛 같다고 했다. 입맛 다시며 아쉬워했던 한여름의 최고 간식으로 기억된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게 없는데 과일이라고 다를 수 있으랴만, 본래 순수했던 자연 그대로의 과일을 맛보고 싶을 때가 있다. 몸이 요구를 하는 건 인공감미료나 조미료에 길들여진 미각이 싫증을 느낀 게 아닐까. 
 

나이 들어가며 점점 옛것만 못한 것들이 많다. 대수롭지 않던 게 귀하게 느껴지고, 흔하던 것들이 알게 모르게 흔적 없이 사라져 아쉽다.
 

식탁 앞에 앉으면 난데없이 맛깔스럽던 옛 건건이 음식이 생각나, 그렇지 않아도 깔깔한 입맛에 수저를 놓고 만다. 맛있는 밥을 한번 먹고 싶은데. 평생 내 손으로 차린 밥상이 종종 신물이 날 때가 있다. 남이 밥 한 끼 차려 주면 꿀맛같이 먹으련만.   
 

풍성한 과일의 계절이 다가온다. 과일트럭에선 꿀사과, 꿀배, 꿀포도 사라 외칠 거다. 나는 또 얼마만큼 단맛을 탐하게 될지.
 

인생살이도 다를 게 없을 게다. 달콤한 것에 홀려 여차하면 쓴맛을 보게 되는 경우가 허다할 텐데, 사람들은 쉽게 단맛에 현혹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