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사전의 존재감
대사전의 존재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김길웅. 칼럼니스트

허우대 엄청나다 싶은데 다른 나라에 비하면 아직 초라하다고 한다.

국립국어연구원이 펴낸 표준국어대사전. 파일북 크기로 총 7308쪽이 상·중·하 세 권으로 나뉘었다.

한 권을 두 손으로 들기 힘들 정도로 덩치 무겁다. 세 권을 가슴으로 안으려 해도 어림없다.

덩치가 엄청날 뿐 아니라 전문가들 힘을 한데 모아 현재로서는 체제 내용이 제일 잘 짜였다는 국어사전 중의 으뜸이다.

내가 주로 보는 중사전과 출판사가 같은 두산동아라, 한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동기처럼 친근감이 든다.

내가 보는 사전은 배에 빗대면 종선(從船)도 못되는 새끼 수준이다.

1992년 온 국민이 편히 이용할 수 있는 사전 편찬에 착수해 7년 만에 내놓은 회심작이다. 사전 발간 의의를 머리말에서 밝혔다.

“금세기를 마감하는 시점에서 민족적 역량을 집결하여 민족 언어 자산을 알뜰하게 모아 놓은 우리말 사전을 갖게 되었다는 것은 우리가 세계 속에 당당한 문화 민족으로 우뚝 설 뿐 아니라, 이 세계를 앞장서서 이끌 수 있다는 자긍심을 키우게 된 자랑스러운 증거라 아니 할 수 없다.”

초판 발행을 1999년 한 세기의 말로 한 것이며, 10월 9일 한글날에 맞춘 것도 그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현재 쓰고 있는 말, 옛말, 외래어에다 북한말까지 포함해 ‘우리말’ 어휘 모두를 한 울타리 안에 모았다. 국어의 집대성이다. 전에 쓰던 말로 ‘말광’이다.

퍼뜩 ‘말광’이 중사전에 올랐는지 궁금해 열었다. 올라 있지 않아 갸웃거리며 대사전을 넘겼더니 떡 한자리 틀고 앉았다. 대사전으로 몫을 하는 걸 실감한다.

글쓰기 중에도 수필은 어휘다. 머릿속에 많은 어휘를 저장하고 있으면 좋다.

문장 속으로 수혈하듯 어휘를 대 주어야 한다. 어휘의 빈곤은 문장을 허약케 하다 아사(餓死)시킨다.

수필을 옥토로 기름지게 하려면 많은 어휘를 가질 필요가 있다.

나는 글을 쓰며 새 어휘를 경험하려 애쓴다.

중얼중얼 외고 노트에 적고, 묵혔다 꺼내 햇볕 쬐고 바람 쐰다. 복습하는 것이다. 모자란 재능을 어휘로 깁고 보태려는 자구책이다.

책상머리에 중사전이 놓여 있다. 십 수 년 사이에 두꺼운 표지가 닳아 해지고 때 묻어 새카맣다. 손이 많이 간 수택(手澤)이다. 검댕에 윤기가 돈다. 손이 자주 닿기로 정인(情人)인들 이만할까.

표준국어대사전은 아직 말끔하다. 손이 쉬이 닿는 벽에 붙여 3층으로 쌓아 놓았다.

중사전에 나와 있지 않은 낯선 어휘와 맞닥뜨릴 때, 뜻을 상세히 알고 싶을 때면 연다.

풍부하게 실려 있는 용례는 갓 잡아 건진 물고기처럼 싱싱해 파닥거리며 바닷물을 튕긴다. 의문이 확 풀릴 때의 쾌감을 무엇에 견줄까. 나하고는 이미 구축된, 아주 두터운 신뢰관계다.

서재에 있는 책 중 가장 크고 무겁다. 매머드 급이다.

갖고 있는 책들을 다 모아도 이만한 무게가 안된다. 우리말 어휘 총량의 무게 아닌가.

이 사전 발간을 새로운 시작으로 삼아 진정한 의미의 대사전을 만들기 위한 수정 작업을 지속적으로 할 계획이라 했다.

발행한 지 스무 해가 목전이다. 새롭게 유행하는 인터넷용어나 신조어가 줄을 서고 있다. 사전이 풀어야 할 당면 과제다.

앞으로 일반 시민이 사전 편찬자로 참여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