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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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선 / 수필가

가을이다.


사위에 가득한 가을 냄새를 맡다 문득 세월이 빠르다는 생각이 든다. 올해로 내 나이 일흔아홉이다. 벽시계 초침을 바라보면 야생말이 내달리는 모습이 보인다. 순간마다 미지로 내달리는 공간을 위하여 심장이 쉬지 않고 작동하여 생명을 지켜주듯, 세월도 쉬지 않고 지구촌의 모든 생태계에 많은 자극을 부여한다. 심장이 뛰는 것은 유한하나, 세월은 무한하다. 시간은 지나고 나야 아쉬워진다. 그도 그럴 것이 가버린 세월은 애타게 다시 불러 봐도 소용이 없다. 추억으로나마 기억할 밖에.


병신년 초봄에 급성 뇌경색 판정을 받아 집중치료실에 입원하는 환자가 되었다. 부디 내 발로 걸어 다닐 수 있기를 얼마나 빌었는지 모른다. 봄부터 여름 내내 병원 신세를 지고 드디어 초가을에 재가 외래치료도 가능해져서 퇴원했다. 


다시 수필을 썼다. 비록 허공에 허튼 몸짓을 하면서도 스스로 걸을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가을은 상실과 결실의 계절이므로 가을에 떠난 것들은 사라진 것이 아니고 다만 멀리 간 것일 뿐이다. 마음의 행로를 찾아 떠나는 가을, 마음이 깊어갈수록 인문학으로 성숙해지길 바란다.


답답한 속세를 떠나는 마음으로 조카의 차에 동승하여 저물녘 바닷가를 산책하다  갯바위 위에 앉는다. 마침 노을이 펼쳐지고 있다. 바다에 비친 그림자엔 황금빛 노을이 흔들리고 있다. 둥지를 찾아 가는지 청둥오리 행렬이 바삐 서쪽 하늘로 날아가고 있다. 어둠이 내리는 붉은 허공에 길을 내느라고 길게 헤엄치는 바쁜 귀갓길이다.


뒤편 먼 곳의 산은 둥근 원추형이다. 서 있는 모습이 반원이다. 산이 원형을 이룰 때는 바다에 그림자를 드리울 때다. 길도 구불구불 곡선을 그린다. 풀밭에선 가느다란 실뱀이 되어 풀 속으로 숨기도 한다. 홍시도 둥글다. 햇볕을 골고루 받도록 모든 열매가 다 둥글다.


산 위에서 부는 바람이 가을바람이라면 바다에 흐르는 물결도 가을바람이다. 갈치도 고등어도 여름엔 더위에 시달렸는지 먼 바다로 나가서 잠잠하다가 제주 하늘이 한껏 드높아 푸르니 제주해협으로 몰려온다고 한다. 갈치 잡이 배들이 하나 둘 불빛을 밝히며 띄엄띄엄 출어에 나서는 모습이 보인다. 제주의 은갈치는 새벽 포구에 가면은 얼마나 살이 올랐는지 길죽한 몸뚱이가 탱글탱글하여 손님들에게 직매하기에 바쁘다고 한다. 어느 원로 수필가가 수필에 제주갈치를 이르기를, ‘갈치마다 은분을 골고루 바른 신의 은총에 감사드린다.’는 대목에 감동을 받고는 자리돔의 비늘이 촘촘하게 입은 모양 또한 신의 배려임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도 바닷가에 오래 앉아있으면 무엇인가 잃어버린 것만 같은 허전함이 밀려온다. 막연한 그것은 무엇인가. 갯냄새에 실려 오는 비릿한 냄새는 갈치 굽는 냄새 같기도 하고 낙엽 타는 냄새 같기도 하지만 어릴 적 꿈이 사라지면서 풍기는 그런 냄새인 것 같아 수평선이 가물거린다.


문득, 수평선의 존재가치를 배운다. 물은 낮은 곳을 향하여 흐르므로 형태에 따라 순응하기에 이 세상에서 가장 선하다는 ‘상선약수上善若水’의 의미를 새삼 깨닫는다. 또한 수평선은 파도가 휘몰아쳐도 넘치거나 모자라지 아니하는 중용의 현장이다. 그리하여 지상의 높이가 해발로부터 비롯되는 것일까.


달그림자가 나무사이마다 빼곡히 서 있긴 하지만 어둠은 깊고 달은 저 멀리 있다. 어느 세월에 나는 자신이 안타까운 늙은이가 되었는지, 인생이란 이런 것인지, 그나마 요절하지 아니하여 다행인지. 처음 내가 왔던 길로 돌아가는 것뿐이라며 머나먼 별빛을 떠올려보지만, 알 수 없는 고독이 폭포처럼 밀려와서 냇물로 흐르다가 땅 속으로 스며든다. 남들도 그러해서 침묵마다 달그림자가 기웃거리는가.


어느새 낙엽이 붉게 물들여가고 있다. 병든 몸으로 밥상을 꾸리다 보면 스스로 서러워서 한숨을 내쉬게 된다. 슬픔은 기쁨에 대한 열등감인가. 환희를 그리는 슬픔은 날지 않으면 추락하고 마는 새의 비상과 같아서 더욱 애절한가. 스스로에게도 고백이 그리운 오후, 창밖은 쌀쌀하다. 이럴 때를 예비하여 수필의 행간은 토해낼 사연으로 흥건하다.


이제 우주 삼라만상의 순리대로 그 법칙에 몸을 맡겨야 한다. 병신년은 유난히도 우울한 해이지만 다시 글을 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천만다행이지 않은가.


이 가을, 낙엽의 안부를 묻고 싶은 외로움까지도 그저 고맙게 받아 드려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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