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와 닉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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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교동으로 돌아간 김대중(DJ) 전 대통령 앞에 어떠한 길이 놓여 있을까.

지금 예고된 길은 그리 순탄치 않다. 대북 송금 파문에 대한 결말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국 역사를 들추면, DJ의 경우와 유사한 기록을 찾을 수 있다.

30여 년 전 대통령을 지낸 리처드 닉슨. 그의 정치 역정이 생각 외로 DJ와 닮은 면이 많다.

혹독한 정치적 시련기를 거쳐 대통령에 당선돼 여소야대(與小野大) 상황에서 재임기간을 보냈고, 정상외교의 새 장을 연 점 등이 그렇다.

무엇보다도 두 사람이 닮은 점은 항상 지식에 굶주려 있었다는 것이다. 절망의 시기를 자기 혁신의 기회로 삼았다. 집권 후에도 틈만 있으면 역사를 공부해 그곳에서 난마처럼 얽힌 현안의 해법을 찾았다. 이 같은 그들의 노력은 찬란한 외교력을 구사한 밑바탕이 됐다.

닉슨의 경우 적대관계에 있던 ‘죽의 장막’ 중국의 빗장을 열었고 베트남전의 종전 실마리를 마련했으며 미.소 간 제1차 전략무기제한협정을 체결해 새로운 동서관계를 설정했다.

이 같은 닉슨의 대외정책은 결과적으로 냉전시대의 종식을 앞당겼다. 따라서 그는 자국에서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최악의 대통령이라는 꼬리표를 달았지만, 외교분야에 있어서는 최고의 대통령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DJ도 닉슨 못지않은 탁월한 전략가로서 세계와 동북아의 새 판을 짰다.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켜 한반도의 긴장을 완화하고 평화 정착의 길을 닦아 현직 대통령으로서 노벨 평화상을 받았으며, 이에 힘을 얻어 세계와의 정상외교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그는 또 한국민의 저력을 끌어모아 가장 짧은 시간에 외환위기를 극복, 세계 경제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더불어 정보통신기술(IT)분야에서 비전을 찾아 한국을 IT 강국으로 끌어올렸다.

퇴임을 전후해서도 정도의 차는 크지만 두 사람은 비슷한 점이 있다.

닉슨은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불명예 중도 퇴진했고, DJ는 대북 송금 파문으로 임기를 마치고도 곤혹스러운 입장에 놓였기 때문이다.

당시 미국은 워터게이트 사건을 일으킨 닉슨을 어떻게 처리했을까.

닉슨의 뒤를 이은 제럴드 포드는 취임 한 달 만에 전격적으로 닉슨의 절대적 사면을 선언했다.

사실 포드는 취임 직후 닉슨과 관련된 문서를 처리하느라 국정을 제대로 돌볼 수가 없었다. 닉슨 처리문제를 둘러싸고 나라 전체가 들끓었기 때문이다. 일례로 취임 첫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의 질문도 열개 중 아홉개가 닉슨에 관한 것이었다(재임기간 언론과 전쟁을 벌였던 닉슨은 권좌에서 물러나자마자 언론의 표적이 됐고, 바로 이 점이 그에 대한 국민 여론을 더욱 악화시킨 요인으로 작용했다).

따라서 포드는 과거사에 발이 묶인 국정과 국론 분열을 차단하기 위해 사면을 결정했다. 즉, 닉슨 개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국가 미래를 위해서 이 같은 결정을 내린 것이다.

포드는 퇴임 후 “내 시간의 100%를 2억5000만 국민과 관련된 문제에 써야 하는데 겨우 한 사람(닉슨)에게 25%의 시간을 빼앗길 순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당시 미국민은 갑작스러운 사면 발표에 폭발했다. 그리고 끝내 포드의 재선을 막았다.

그러나 최근 평가는 다르다.

포드의 결단이 옳았다는 것이다. 만약 당시 닉슨이 형사소추를 당했다면 지루하게 전개됐을 법정싸움으로 국정 혼란이 불가피해 미국이 나락으로 떨어졌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닉슨은 퇴진 이후에도 비밀특사 자격 등으로 중국과 러시아를 여행했고, 후임 대통령들에게 국제관계에 대해 조언하는 등 국익에 큰 보탬이 됐다.

DJ는 닉슨보다 훨씬 더 좋은 조건을 갖췄다. 부도덕한 닉슨과는 달리 국제적 위상이 높기 때문이다. 즉, 세계는 여전히 그를 평화와 인권의 지도자로서 존경심을 갖고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한반도는 북핵문제로 절박한 위기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북핵 해법을 놓고 한.미 공조에도 균열 조짐이 보이고 있다.

이들 문제를 주도적으로 푸는 데 DJ의 자산을 적극 활용할 수 없을까. 노무현 대통령과 국민의 선택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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