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掛弓軒次板上韻(괘궁헌차판상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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作詩 勉菴 崔益鉉(작시 면암 최익현)
▲ 김경국

漢拏山一點 한라산일점 한 점의 한라산

積水渺茫中 적수묘망중 아득한 바다에 떠있구나

槐乏元城操 괴핍원성조 원성같은 지조가 모자라 부끄럽고

肯嫌屈子窮 긍혐굴자궁 굴자의 궁함이 감히 싫어할까

光迎蓬海月 광영봉해월 밝은 빛은 봉해의 달을 맞이하고

香襲橘林風 향습귤림풍 향기는 귤림에서 풍겨오네

萬里君親遠 만리군친원 임금님과 어버이는 먼 곳에 계시니

綠何罄素衷 녹하경소충 나의 속마음을 어떻게 보이리

 

▲주요 어휘

△茫=아득할 망 △元城=송나라 유안세 △屈子=굴원, 초나라 정치가

△襲=엄습할 습 △罄=빌 경 △衷=속마음 충

 

▲해설

면암(勉菴)과의 인연은 대학원 재학 시 지도교수였던 양중해 교수님의 권유로 ‘면암 최익현의 유배 한시 연구’를 석사 논문으로 쓰면서 맺어졌다. 면암 최익현은 1833년(순조 33년) 12월 5일 경기도 포천현에서 태어나 1906년 11월 7일 유배 중이던 대마도에서 74세를 일기고 순국하였다. 23세에 출사(出仕)한 후 그의 생애는 상소와 유배의 생활로 점철되었으며, 반일거두(反日巨頭)로서 일제의 폭압 밑에서도 의병을 일으켜 우국의 신념을 몸소 실천한 지사였다. 이러한 생애와 신념이 바탕이 된 그의 한시가 면암집(勉菴集)에 326수 실려 있다. 그런데 금강산 기행시 40수를 제외하면 대부분 유배지에서 쓰여 진 작품들이다. 소개하고 있는 시는 면암이 1873년 고종 10년 호조 참판에 제수되었으나, 사직소(辭職訴)와 함께 대원군을 탄핵하는 오조대의(五條大義)의 상소를 올린 것이 원인이 되어 제주도에 위배되었다. 제주도로 오는 도중 같은 해 11월 28일 이진(梨津)에 이르러 바람을 기다리고 있을 때 괘궁헌 현판에 쓰여 있는 시에 차운(次韻)한 작품이다. 여기에서 면암은 자신의 지조를 송나라의 원성 유안세(元城 劉安世)에 비하여 보잘 것 없음을 부끄러워하고 임금에 대한 충성과 부모에 대한 효도가 부족했음을 반성한다. 그러면서도 굴원의 속세에 물들지 않는 청렴결백함을 본받고자 하는 마음이 나타난다. 특히 미련(尾聯)에서는 유배된 부자유한 몸이어서 충효를 다하지 못함을 함축하여 나타내고 있다. 오언율시 형식에 동운(東韻)을 쓴 평기식 작품이다.

<추천 목민 김경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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