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주의 골목, 올레는 죽은 이들의 원활한 출입을 위해 무덤에도 조성돼 유교적인 제주인의 사생관을 보여준다. 사진은 서귀포시 토평동에 있는 산담의 올레 모습.

제주인의 사생관(死生觀) 중 산담은 제주인의 효에 대한 생각을 엿보게 한다. 올레는 그것의 대표적인 흔적이다. 죽은 자에게도 마치 산 사람처럼 출입구를 만들어서 아무나, 아무 때나 함부로 그곳을 드나들지 못하게 막는 것은 조상과 자손이 서로 교감하는 생사일여(生死一如)의 사상을 말해준다. 죽은 자는 산 자들에 의해 보호받고 그럼으로써 조상은 항상 자손을 언제 어디서든 돌보는 존재가 된다. 그것에 상응하기 위해서 자손들은 조상에 대해 영혼불멸을 믿는데 그것의 행위가 바로 ‘식게’라고 부르는 제사 행위이다. 

 

▲올레
요즘 올레는 올레 코스라는 의미로 축제화 되면서 기본원리가 변형되고 왜곡된 채 소통 되고 있다. 원래 올레는 영혼이 다니는 신문(神門)을 말하는데 지역에 따라 올래, 오래, 올레-도, 도, 시문(神門), 신문(神門)이라고도 한다. 올레는 제주의 골목을 일컫는 말로, ‘한질(큰길)에서 집으로 들어가는 기다랗고 구부러진 길’을 말하는데 정확히 마당 바로 직전까지이다. 올레는 직선으로 내기보다는 휘어지게 곡선으로 만든다. 올레의 역할은 집으로 들이치는 센 바람의 영향을 줄이는 기능이 있고, 또 집안으로 오는 사람들의 거동을 살필 수 있게 하며, 집집마다 독립적인 영역을 표시하기 위해서도 만들어졌다.


올레는 혼(아래아)(같은)올레와 톤(아래아)(다른)올레가 있어 올레로 동질감을 표현하기도 한다. 혼(아래아)올레는 한질(큰길)에서부터 시작되면서 다른 집으로 가는 올렛가지가 있어 올레 입구가 한 군데이면서 여러 작은 올레가 나뭇가지 형태로 벋은 것을 말하며 대개 3~4집 이상은 보기 어렵다. 가까운 인척이 이웃으로 분가(分家)하면서 올렛가지가 형성된 것이다.  


큰길에서 올레로 들어가는 곳 바닥에 올레?(턱)이라는 경계석이 박혀있고, 올레를 지나서 다시 마당 입구에 이르면 마당톡(아래아)(턱)이라는 경계석이 땅에 박혀 있다. 이런 올레의 원리는 각 영역을 구분하는 토지신의 영역을 구분한 것이기도 하다. 올레에는 올레직이가 있고 마당에는 터주신, 집에는 성주신이 있는 것으로 간주하여 영역을 구분하는 것이다.  


산담의 중요한 구조인 올레(신문)는 영혼의 세계 또한 삶의 세계를 그대로 옮겨놓은 유교적인 생사관(生死觀)에 기인한다. 산담의 신문(神門)을 사람들이 출입하는 골목과 같다 하여 올레라 부르고 있는 것은 영혼 또한 거처하는 장소가 다를 뿐 산 사람 같이 생각하기 때문이다.


‘시문’이란 신문(神門)의 와음(訛音)으로 신이 다니는 길이라는 뜻이다. 신문이라는 말은 종묘나 향교에 신이 다니는 길을 따로 부르는 신문(神門)을 모방하여 한학자들이 부르는 것이 산담에 정착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또한, 왕릉의 신이 다니는 길인 신도(神道)의 모방적 표현이라고 해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제주에서 무덤을 ‘산’이라고 부르는 것도 따지고 보면 한(漢)나라 이후 황제릉을 산릉이라고 불렀던 것에 유래하여 ‘산’이라고 부른 것이다. 


도는 출입구를 이르는 제주어이다. ‘이아주소(爾雅註疎)’에 의하면, 도는 길(途)이라는 뜻으로 곧 도(道)이다. 도(道)는 ‘곧다(直)’라는 의미인데 ‘곧아서 구부러짐이 없는 것이다’라고 했다. 로(路), 장(場), 유(猷), 행(行)은 도(道)로써 ‘길’의 이름을 널리 말한 것이다. 제주 산담에서는 ‘도’를 ‘길’이라는 속뜻을 포함하는 출입구라는 의미로 쓰이고 있다.


올레는 산담의 좌측이나 우측에 약 40~50cm가량 통로를 트고 그 위에 길쭉하게 다듬은 돌을 1개에서 3개까지 올려놓는데 이를 ‘정돌’이라고 한다. 마치 산 자의 집 입구에 정낭을 걸친 것으로 생각하면 된다. 올레 출입구 양편에는 안척(內側)과 밧척(外側)에 사각형의 돌이나 평평한 자연석으로 올레?을 땅에 묻어 올레 경계의 시작을 표시하고 올렛길에는 잔돌이나 자잘한 돌을 깔아 영혼이 편하게 다니기 좋도록 만든다. 간혹 올레가 있는 산담 안쪽에 댓돌을 놓아 영혼이 신발을 벗을 수 있도록 한 경우도 있다. 또 올레가 없는 산담인 경우 산담 정면 중앙에 안팎으로 계단을 놓아 영혼의 출입이 쉽도록 배려한다. 남녀의 산담에 따라 올레 위치에 이와 같이 돌계단을 놓는다. 

         

   
 

▲올레의 위치
향토 사학자 故 박용후 선생에 따르면 신문은 일반적으로 ‘여자의 묘는 오른쪽에, 남자의 묘는 왼쪽에 50㎝가량 담을 튼다’고 하였다. 필자가 수백 개의 산담을 살펴보니 과연 그 말이 사실이었다. 풍수가 정성필 선생은, 생존 시 이승에서는 ‘남좌여우(男左女右)는 원래 음양의 이론으로서 남자는 양(陽)에, 여자는 음(陰)에 해당하여 좌측은 양이 되고 우측은 음이 된다’고 하는데, 동양 음양사상의 일반적인 관념이다. 이 관념에서는 저승의 세계에서는 남좌우여(좌상우하)가 남우여좌(우상좌하)가 된다. 산담의 쌍묘를 보면 망자를 기준으로 해서 남자는 우(서쪽), 여자는 좌(동쪽)에 묻힌다. 


또 합묘도 마찬가지로 이 원칙이 적용되는데, 곧 망자가 누운 머리 위치를 기준으로 해서, 남자는 오른쪽(서쪽)에, 여자는 왼쪽(동쪽)에 시신을 누이는 것은 망자를 높이는 우상좌하(右上左下)의 원칙 때문이다. 신문(올레)을 내는 경우, 남자의 무덤인 경우 망자의 시점에서 좌측이 되고, 여자는 우측이 된다. 간혹 이런 원칙을 벗어난 신문도 있는데 앞으로 신문이 트인 경우, 좌우가 모두 터진 경우, 남녀 좌우가 바뀐 경우도 있으니 이는 전체의 5~6%쯤 된다. 


사실상 울타리는 산자나 죽은 자나 다 같이 있는데 죽은 자의 올레의 기능은 혼백(魂魄)만 다니는 전용 출입구이며, 산자가 다니는 출입구는 산담 네 귀의 팡돌이다. 올레는 1~3개의 길쭉한 정돌을 올려놓아 사람이나 마소의 출입을 금한다. 대략 20세기 이후에 조성된 산담에는 올레를 만들지 않고 그냥 막아버린 경우가 많다. 또 전방후원형 외담 산담인 경우 올레를 만들지 않는다. 1960년대 말 이후 유행했던 시멘트 산담인 경우에도 올레를 만들지 않았다.


▲정돌
다시 말해 영혼이 다니는 올레(神門)의 길을 막는 돌을 정돌이라고 한다. 정돌은 올레 위에 얹어놓는 돌인데 길지만 모나게 다듬은 돌이다. 지름 20~30㎝, 길이 50~60㎝가량 둥글넓적하게  생긴 돌을 1개, 혹은 2개를 놓으며, 산담 폭이 넓어 올래가 길 경우 3개까지 올려놓아 마소나 사람의 출입을 금한다. 제주의 전통적인 산담은 모두 이 올레에 정돌로 막고 있었으나 20세기 이후 올레가 사라지면서 산담을 조성한 올레 자리에 산담 안과 밖으로 드나들 수 있도록 돌계단을 만들어 두고 있다. 

 

사진 설명=서귀포시 토평동에 있는 산담의 올레.
서귀포시 토평동에 있는 산담의 올레를 올라다 본 모습.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리에 있는 산담 앞쪽에 위치한 올레의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