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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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희성 현대법률연구소장 前수원대 법대학장/논설위원

많은 분들이 ‘김영란법’ 시행 후 세태를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였을 것이다. 금품 등을 주고받거나, 향응 대접이 사라지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백번 환영할 일이다. 나도 그동안 관행적으로 행하여져 온 악습이 사라지고, 온갖 비리가 견제되는 계기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법의 취지가 제대로만 정착된다면 국가성립 후 획기적인 일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 제도의 역기능도 없지 않아 보인다. 모든 상거래 및 음식점경영에 어려움을 주리라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상황이 발생하는 것은 국가·사회를 위하여 피할 수 없는 ‘사회적비용’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김영란법’의 획일적·기계적 시행이 우리사회의 아름다운 인정을 가로막는 역할을 하거나, 악의를 가진 자가 이용하는 제도로 변질되는 것이 우려된다.

이 법이 시행되던 날, 나는 어떤 국가기관에 상담 및 서류발급차 방문했다. 상담자는 업무를 잘 숙지하고 있었고, 매우 친절하였다. 그래서 일을 마치고 건물 밖으로 나와서 포도를 좀 사다 주었다. 물론 ‘김영란법’에 해당하는 경우도 아니고, 모종의 비위의 대가도 아님은 물론이다. 처음에는 거절했으나, 나의 간곡함에 못 이겨 끝내는 받아들였다.

또 하나는 이 법의 시행 이후 내가 유명 출판사에 책의 증정을 부탁하였는 바 그전 같으면 감사하다고까지 하면서 보내주었으나 ‘김영란법’에 해당한다고 보내는 것이 어렵다고 하였다.

나는 그동안 수십 개의 단체의 장을 지냈고, 많지는 않지만 상당수 직원을 거느리고 있었고, 그들을 늘 내 동생·자식처럼 대우하고 지내왔다. 특히 학장·대학원장으로 있을 때, 방학이 끝나고 등교하면 캔 커피 하나를 들고 찾아와 인사하는 젊은 교수나 학생들의 인성(人性)이 착하다고 생각을 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김영란법 시행의 뒷날 모 신문에 담당교수에게 인사차 찾아가면서 캔 커피 하나를 들고 간 것을 신고한 것이 보도되었다. 물론 이는 ‘김영란법’에 해당하지 않음은 물론이나, 법을 악용하는 사회악(?)에 속하는 처사라고 평가하고 싶다.

이 법은 아름답고, 인정적인 인간관계를 파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인사위원으로 재직하던 때 접했던 사건에 관해 이야기해 본다.

A는 관내에서 조그마한 기업을 하다가 망하였다. 그는 공무원 B의 안내로 시작한 사업이 성공했다. 몇 년 후에 A가 B를 찾아갔을 때는 다른 기관으로 전출하였으나, 그곳까지 찾아가 예전의 고마움으로 일방적으로 서랍에 약간의 돈이 담긴 봉투를 놓아두고 간 것이 징계에 회부된 사건이 있었다. 나는 정상을 참작하여 돈이 오고 간 사건임에도 경징계를 주장하였고, 타 위원들도 찬성하여 처리한 경우가 있었다. 또 어떤 80세 정도의 노인이 10억 가량의 저축을 하고 그 이자로 생활하고 있었는데, 은행을 찾을 때마다 그 은행의 간부는 그 노인을 편히 모시고 심지어 잔심부름까지 직원에 대행시켰다. 10억을 예금한 고객인데다 80세가 넘고, 걸어 다니는 것이 불편한 노인이니 은행의 고객관리 차원상 당연한 것이었다. 그 노인은 연말에 그 예금파트에서 점심을 먹도록 금일봉을 내놓았으나, 은행 측은 완강히 받기를 거절하였다, 그 후 그 노인은 예금을 다른 은행으로 옮겼다. 고마움의 표시를 거절한 것이 젊은 사람들에게 모욕당하였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 경우, 은행의 거절은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은행의 청렴성이 한 노인의 인정도 거절한 것이 되었다면, 그것은 단순한 ‘규범의 충돌’일 뿐일까.

강조하건대 ‘김영란법’은 부정을 방지하는 시스템으로 기능해야지 이 사회의 인정마저 배제시키는 기능을 가져서는 안 될 것이다. 빈대는 잡아야 한다. 그러나 빈대잡기 위하여 초가삼간을 태우는 일은 피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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