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라산 고지에 있는 마희문의 무덤에는 토산단 대신 정자관을 쓴 토지신상이 세워져 있다

유교의 성리학적 세계관은 ‘하늘은 둥글고 땅은 모나다’라는 천원지방(天圓地方) 설에 근거한다. 유교의 모든 제사의례는 신을 찾아 뵙거나 참배하고, 또 그 신에게 고(告)하고, 기원을 드린다. 보살핌을 구하기 위해 술과 음식과 같은 제물을 드리는 행위다. 유교에서 제사를 드리는 가장 큰 대상으로서는 하늘로 상징되는 상제(上帝)가 있고, 천신(天神)으로 상제의 아래에 있는 자연신인 일월성신, 구름, 비 등 하늘을 주관하고, 토지, 곡식, 산천, 바다와 같이 땅을 주재하는 지신(地神)이 있다. 또 인간의 사후존재인 일종의 조상신을 일컫는 인귀(人鬼)가 있으나, 사실상 가정의례에서는 조상신으로 부르는 인귀가 더 중요하다.


이에 따라 유교는 대상에 대해 제사의 의미를 다르게 부르는데, 제사의 명칭도 천신(天神)에 대해서는 사(祀), 지신에 대해서는 제(祭), 인귀에 대해서는 향(享)이라고 했지만, 이 용어들은 대개 서로 결합해 쓰이고 있다. 이처럼 유교에서는 조선 시대 신분 위계적 질서에 따라 제사 지낼 수 있는 신의 범위가 정확히 정해져 있다. 흔히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요즘 제사로는 기일제사와 묘제 등이 있다. 소위 인귀라고 부르는 귀신은 산사람과 같이 하나의 인격체로 여겨진다. 이미 귀신은 돌아가신 존재이나 마치 산 사람을 대하듯 자손들은 정성을 다해 모심에 따라 조상의 덕이 자손에게 미친다. “죽은 이를 섬기 되 산 사람처럼 섬겨야 한다”는 것이 유교의 가르침이다.

 

   
▲ 조상을 잘 보우해달라고 토지신에게 제물을 차려 제사를 지냈다. 사진은 토신제 제물 모습.

▲토신단과 희귀한 토지신상


무덤에 조성된 석물 중 마치 밥상처럼 생긴 석물 두 개가 있다. 하나는 묻힌 영혼을 위한 상에 해당하는 봉분 앞에 놓은 상석이고, 다른 하나는 무덤의 토지 주인인 토지신의 상으로 무덤 뒤편에 있는 ‘토신단’이다. 무덤에서 가장 중요한 상이 바로 이 토신단인데 크기는 세로 약 30cm, 가로 40~50cm의 직사각형 모양의 돌을 평평하게 다듬어 망자를 기준으로 무덤 후면 좌측에 놓는다.

 

이 토지신은 후토신(后土神). 혹은 산신(山神)이라고도 하는 데 무덤의 토지신을 말하는 것이다. 또 마을에 따라 산젯상이라고도 부른다. 산제를 지내는 상(제단)이기 때문이다. 이 제단에서는 산담 안 무덤의 땅 주인인 토지신에게 조상 제사에 앞서, 자신의 조상을 잘 보우해달라고 제물을 차려 제사를 지낸다. 후손들이 시제(時祭) 시 조상 묘지를 찾아 제례를 올릴 때 먼저 간단한 제물과 토지신축을 차려 제를 지내야 한다. 그다음에야 조상 제례를 시작할 수 있다. 토신제는 다시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장례 때 무덤 조성 전 지내는 토신제와 무덤 조성 이후 시제 때나 이장때 지내는 토신제가 그것인데 제사의 의미는 같다.   


토신단은 제사로 조상의 의미를 드러내지만, 유교의 사례에서 볼 수 없는 희귀한 토지신상이 제주의 무덤에 몇 기 전해온다. 한라산 고지에 있는 처사(處士) 마희문(馬喜文)의 무덤, 산새미 오름 지경에 있는 그의 처 여산(礪山) 송씨 무덤, 그의 아들 덕전(德田) 마용기(馬龍起) 무덤에는 토신단 대신에 토지신상이 세워져 있다. 마용기의 아버지 마희문의 무덤에는 정자관을 쓴 토지신상이 세워져 있고, 그의 처와 아들의 무덤에는 동자상과 비슷한 토지신이 용미 좌측 구석에 세워져 있다.

 

특히 한라산의 명당 중 하나인 돋트멍 명혈지에 있는 마희문 무덤의 검붉은 용암석 토지신상은 제주도에서 유일한 정자관을 쓴 토지신상으로 자료가치가 매우 높다. 마희문의 무덤은 앞은 직각이고 뒤는 둥근 형태의 전방후원형(前方後圓形) 산담으로 일명 도토리 모양으로 무덤을 둘렀다. 무덤 앞쪽으로 돌하르방처럼 벙것을 쓴 문인석 2기와 동자석 2기가 있다. 도토리 모양 산담은 주변의 붉은 빛 현무암 자연석으로 잡석 쌓기를 하였다.  


마희문 집안의 토지신상은 매우 특수한 무덤 형식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 제주도의 다른 무덤에서 볼 수 없는 토지신상을 세운 이유는 아마도 마희문 집안의 종교적인 이유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특수한 사례를 마치 조선 시대 일반적인 무덤의 양식인 양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제주민속사전’에 매우 특수한 사례로 꼽히는 토지신상을 제주의 묘지도(墓地圖)에 그려 넣었다. 이는 무책임한 일로 특수한 사례로만 언급해야 할 토지신상을 마치 일반적인 제주의 묘지제도인 것처럼 오인케 하여 제주도의 묘지제도를 왜곡되게 생각할 수 있게 된다. 


분명 토지신은 유교에서는 육신(魄)이 묻힌 땅의 주인이라는 점에서 불교나 무속처럼 신의 형상으로 표현하지 않고 상징적으로 ‘土地之神位’란 위패 대용의 지방(紙旁)으로만 표현된다. 신의 형상의 표현은 유교에서는 미신이라는 관념이 크며, 죽은 사람 또한 살아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생각하기 때문에 조상이 살아있을 적에 영정이나 초상은 그릴지 몰라도 타종교처럼 상상의 세계나 신의 모습은 그리지 않는다. 석상인 경우 조상의 생활과 직접 관련된 무인석, 문인석, 석마, 석양, 동자석 등만 세운다. 그러나 마희문 토지신상은 그 형상이 유교 선비의 정자관을 썼다는 점에서 묘주와의 관계를 생각한 후손의 배려라는 의미가 크다. 

   
▲ 제주지역 대부분의 무덤 뒤편에는 직사각형 토지신의 상인 토신단이 놓여있다.

▲토신제 제물 터부시해 먹지 않아


장례 때 토신제 사례는 대정지역의 사례를 보면, 지관에 의해 장례 날짜와 장지(葬地)가 정해지면, 장례 하루 전날 제관은 산터가 정해진 곳(지관이 지정한 약 70cm 길이에 양쪽으로 대나무를 세우고 실을 맨 곳)을 찾아 택일 시간에 맞춰 새(띠)를 깔아 제단을 만든 뒤 제사를 지내야 한다. 지관이 정해준 땅에 무덤을 정하는 것은 음택의 위치와 방위가 인간의 길흉화복에 영향을 미친다고 믿기 때문이다. 태어나는 시간으로 사주팔자가 정해져서 평생의 운명을 좌우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땅에 묻히는 시간도 저승에서의 운명과 자손에게 미친다고 여겼기에 묘터와 하관 시간에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이때 행하는 토신제는 사토제(祠土祭)라고도 하는데 먼저 토지신에게 새로운 망자가 해당 땅에 온 것을 알리고 그 망자의 체백(體魄)을 보호해 달라는 데 있다. 제관(祭官)은 학식이 있는 다른 동네 사람(선비)을 빌어 지내는 데 최근 남의 초상 난 곳에 다녀오지 않은 사람이어야 한다. 토신제의 제물은 메와 떡을 제외하고는 모두 날 것으로 쓴다. 토신제에 쓰는 제물은 제관에게 부탁하거나 친척 집에서 마련해야 하는데 초상 난 집은 불결하다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토신제를 지낸 후 음복을 하지 않으며 쓰인 제물은 모두 땅속에 묻는다. 요즘은 잡식만 간단히 하고 집으로 가지고 오지만 원래 제물에 잡신이 많이 붙었다고 하여 먹는 것을 터부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