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난 문화, 이대로 좋은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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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경주 제주대학교 명예교수/논설위원

일본을 예로 들면, 일본인들은 우리에게서 난 문화를 받아들인 후 오랜 세월에 걸친 난과의 접촉을 통해 일본인들의 공통적 미의식을 반영해 줄 수 있는 요소를 난에서 발견하게 됨으로써 중국이나 한국과 다른 독자적 난 문화를 이루어 낼 수 있었다. 따라서 우리는 일본의 난 문화를 통하여 그 밑바닥에 놓여 있는 일본인들의 공통적 미의식을 느끼게 된다.

일본의 난 문화 속에 나타난 일본인들의 미의식을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일본인들은 난의 배양과 감상에서 불교의 도(道)나 검도(劍道) 그리고 서도(書道)와 같은 도(道)의 세계를 찾고 있음을 볼 수 있으며, 절제와 조화와 엄숙함과 비장함을 근간으로 한 칼의 문화가 난의 문화에 배어있음을 볼 수 있다. 일본인들은 난에서 도(道)와 검(劍)의 세계인 정적과 긴장 그리고 그 속에서 한 순간 일어나는 불꽃과 같은 현란함을 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전통 난 문화에서는 난을 어떻게 보았는가? 다시 말해서, 난초에서 무엇을 보고 느꼈기에 우리의 선조들은 난을 그렇게 예찬하였는가?

필자의 견해로는, 우리의 선조들은 곧은 듯하면서도 휘어 있으며, 감긴 듯하면서도 뻗어 있고, 날카로우면서도 유연한 잎세와 늦가을 서릿발 속에서나, 이른 봄 녹아든 잔설(殘雪) 사이에서도 강인하면서도 뽐내어 들내지 않고, 화려함을 수수함으로 애써 감추는 꽃, 그리고 잡힐 듯하면서도 잡히지 않는 맑고 은은한 향기에서 그들의 이상적 인간상이었던, 권력과 금력 그리고 시류에 흔들리지 않는 고결한 선비의 모습과 정신세계를 보았을 것이 틀림없다.

더구나 한란 꽃은 우리에게 선비와 잘 어울리는 학(鶴)의 이미지를 갖고 있어서 봉오리였을 때는 학의 머리를 연상케 하고, 만개하면 무리지어 솟아오르거나, 무리지어 날아가는 군학(群鶴)을 연상케 하여 선비와 학이 난꽃 속에 어우러지게 한다.

그러므로 이제는 우리의 난을 우리의 눈, 다시 말하여 우리의 미적 감각을 가지고 난을 보아야 하겠다. 이를 비유적으로 표현하면 우리 난에 우리 옷을 입혀서 보자는 말이며, 이를 보다 직설적으로 말하면 제주한란에 왜색 옷, 즉 키모노나 훈도시를 입혀 볼 수는 없지 않느냐는 말이 되겠다.

그 뿐이 아니다. 이제는 더 이상 늦기 전에 우리 난에는 갓을 씌우고 붓을 쥐어줘야 하지 왜색 민머리 상투를 틀게 하고 칼을 잡게 해서는 안 되겠다. 논지가 다소 지엽으로 흘러 중언부언하게 되고 말았지만 한 번 우리의 난을 우리의 미의식으로 관상하지 못했을 때 일어나는 우스꽝스러움은 앞서 말한 이미지를 떠올리면 쉽게 떠올릴 수 있다. 가히 포복절도할 노릇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우리가 처한 난 문화의 전통과 미의식의 단절은 시민들로 하여금 현란한 장미와 양란의 자극적 아름다움에 파묻혀 난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보고 느끼지 못하게 하고 있으며, 우리 난계의 존립을 위협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바 있듯이, 문화는 인간과 자연 환경과의 끊임없는 접촉과 교류의 결과, 인간이 만들어낸 대상물에 대한 인간의 의식과 가치관의 산물(産物)이므로 난 문화도 예외일 수 없으며, 난 문화의 밑바탕도 난의 인간에 대한 가치, 즉 아름다움 등에 대한 인간의 의식에 의하여 이루어지기 때문에, 우리의 난계가 존속하기 위해서는 시민들로 하여금 끊임없이 난과 쉽게 접촉할 수 있도록 난을 지속적으로 염가에 보급하고, 난에 대한 전통적 미의식을 체계화하여 심어주며, 아울러 시대의 변화에 맞는 난의 아름다움을 창조하고 찾아내도록 교육하는 길 외에 다른 대안이 없다.

그 길만이 한국의 난계와 난 문화가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길일뿐만 아니라, 이미 2000년대에 들어선 한국의 난계가 화급히 서둘러야 할 일이며, 우리의 난계가 우리의 문화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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