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억새가 산 전체를 뒤덮어 가을이면 더욱 빛을 발하는 마보기오름.

유난히 무더웠던 여름이 지나고 어느새 가을이 익어가고 있다. 지금 제주의 가을은 온통 은빛이다. 제주의 들녘에는 억새가 만발해 깊어가는 가을을 반기며 제주를 은빛으로 물들이고 있다. 올 여름 유래 없는 폭염 탓인지 억새가 더욱 반갑고 아름답다.


제주의 들녘 어디를 가든 억새가 아름답지 않은 곳이 없다. 그 중에서도 가을의 전령사 억새의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오름들이 있다. 제주오름의 여왕 서귀포시 표선면의 따라비오름, 들불축제의 현장 제주시 애월읍 새별오름, 한림읍의 정물오름, 서귀포시 안덕면의 마보기오름 등.


그 중 마보기오름은 오름 전체가 억새로 뒤덮여 마치 한겨울 하얀 눈이 쌓인 듯한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마보기오름은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억새의 아름다움만은 최고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절경을 자랑한다. 마보기오름은 찾아가기도 쉽고, 힘들이지 않고 오를 수 있으며, 억새뿐 아니라 제주시 애월읍과 한림읍, 한경면, 서귀포시 대정읍, 안덕면 등 제주 절반의 풍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마보기오름은 평화로에서 산록도로를 이용해 핀크스골프장으로 가다보면, 포도호텔을 바로 지나자마자 왼쪽으로 ‘마보기오름’ 표지판이 보인다. 적당한 곳에 차를 세운 후 이 표지판이 안내하는 방향으로 삼나무 숲길을 따라 걷기만 하면 된다.


마보기오름에서 숲을 헤치고 1시간 정도 가면 신령스러운 산 영아리오름(남원읍 수망리의 영아리오름과는 다른 오름. 서영아리 또는 용와이악·龍臥伊岳·으로도 불리움)있다. 이 영아리의 동쪽에는 어오름, 서쪽에는 하늬(서쪽)보기오름, 북쪽에는 이돈이오름, 남쪽에는 마(남쪽)보기오름이 있다. 마보기오름은 영아리에서 남쪽에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오름 탐방로가 골프장을 끼고 있어서인지 탐방로 입구에서부터 길 안내 리본에 골프공이 달려 있는 것이 특이하면서도 귀엽기도 하다. 길게 이어진 삼나무 숲길을 따라 10여 분을 오르다보면 삼나무는 어느덧 자취를 감추고 은빛 출렁이는 물결이 탐방객을 반긴다.


정상이다. 마보기는 세수할 때 손으로 물을 길을 때 모양처럼 완만하고 넓직한 두 개의 봉우리가 서로 마주 보는 형상으로 어디를 보든 억새물결로 마치 억새의 바다를 헤엄치는 듯한 느낌이다. 두 봉우리 사이에 위치한 작은 무덤마저도 포근하게 느껴진다. 산 속에 있으면 나무는 보이지만 산 전체를 보지 못하듯. 마보기 억새를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마보기를 벗어나 영아리오름으로 발길을 돌려야 한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마보기에서 하늬보기나 영아리오름으로 가는 과정에서 길이 뚜렷하지 않아 길을 잃고 헤매는 탐방객이 많았었는데, 지금은 누군가가 친절하게도 초록색 끈으로 영아리오름까지 안내선을 설치해 놓았다. 이 줄을 따라 왔던 곳에서 맞은편으로 마보기를 넘어서면 억새의 아름다움에 탄성이 절로 난다.


마보기 억새의 아름다움을 뒤로하고 초록줄을 길잡이 삼아 영아리로 향해 걷다 보면 또 다른 절경이 반긴다. 드넓은 억새평원이 끊임없이 펼쳐져 있어 주변이 온통 은빛 세상이다. 뒤를 돌아보면 하얗게 눈이 내린 듯 은빛에 뒤덮인 마보기오름의 풍광과 함께 억새 사이로 한눈에 들어오는 산방산과 단산, 송악산, 형제섬 등은 한 폭의 산수화 같다.


잠시 절경을 감상하고 끈을 따라 가면 어느 새 영아리오름이 품은 보물, ‘행기소’라는 작은 못이 나온다. 연못을 카메라에 담고 사람들이 다녔던 흔적을 찾아 오르면 영아리의 정상, 이 정상에 서서 보면 멀리 눈 쌓인 마보기오름과 함께 이곳까지 걸어왔던 길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조문욱 기자 mwcho@jeju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