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와 실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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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한성. 재 뉴질랜드 언론인

최순실 사태로 한국사회가 충격에 빠졌다. 최순실이라는 자연인이 비선 실세로 국정을 농단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많은 국민이 단단히 화가 났다. 대통령의 퇴진과 거국 중립내각 구성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터져 나오고 있다.

한국 정치에서 되풀이 되는 고질병 중 하나는 실세 또는 측근에 의한 부정과 비리, 민주주의 유린이다. 그동안 많은 대가를 치렀지만 좀처럼 고쳐지지 않는 뿌리 깊은 병이다. 이번 최순실 사태는 물론 최고 권력자 주변의 친인척 비리도 알고 보면 뿌리는 똑같다. 최고 권력자들이 보이지 않는 권력을 용인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들이다.

민주주의는 국민적 합의의 바탕 위에서 굴러가는 제도다. 따라서 민주사회의 정치나 국정은 이런 틀 안에서 이루어지는 게 당연하다. 운전대를 잡은 지도자가 아무리 운전을 잘 해도 국민이 모르는 오프로드를 달려서는 안 된다. 면허도 없는 사람에게 슬쩍슬쩍 운전대를 맡기는 건 직무유기이고 범죄행위이다. 민주주의라는 게 절차에 관한 제도라는 걸 상기하면 그건 분명해진다.

국정이 정해진 틀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건 정당과 정부 부처 등 공조직을 이용해야 한다는 말이고 방법이 정당해야 한다는 말이다. 인적 자원도 당연히 그런 조직 내에서 동원해야 한다. 그게 제도이고 민주주의다.

하지만 정치인들은 웬일인지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 같다. 그래서 후원회니 팬클럽이니 포럼이니 하면서 주변에 많은 조직을 만든다. 마치 세력의 바로미터가 됐던 신라와 고려 말기의 사병 조직을 보는 것 같다. 정치인 스스로 나서서 만들기도 하고 유력한 정치인에 줄을 대기 위해 나서는 사람들도 있다. 대권을 꿈꾸는 정치인들에게 그런 조직은 필수가 돼 버린 느낌이다. 실제로 대권을 위한 베이스캠프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문제는 이런 조직들이 끝까지 후원단체나 외곽세력으로만 남아 있지 않는다는 점이다. 집권을 위한 정치 결사체인 정당 못지 않은 힘을 발휘할 때도 있다. 이런 조직에서 다져진 인적 네트워크가 공조직의 위계질서를 위협하는 단계에 이르면 실세니 비선조직이니 하는 말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 가족과 친구들까지 끼어들면 공과 사의 경계는 완전히 허물어지고 만다.

이렇게 형성된 관계나 조직의 약점은 폐쇄성과 패거리 문화의 한계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것이다. 공조직과 달리 조직 운영에 있어 공공성이나 균형감각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자기비판은 고사하고 합리적인 의사결정 과정도 효율성 앞에서 얼마든지 유보될 수 있다. 부정과 비리의 소지도 커진다.

이뿐만이 아니다. 실세라는 말에서 드러나 듯 어떤 조직에서 힘을 행사하는 주체가 제도가 아니라 사람이 된다는 점도 문제다. 직책이 중요한 게 아니라 누구냐가 중요해지는 것이다. 권력자와의 거리가 중요한 잣대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민주주의는 중병을 앓게 된다.

또 다른 문제는 실세가 공조직 속에 들어와 있지 않을 경우 제도적인 감시나 검증이 아예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이번의 경우처럼 아무런 자격도 없는 자연인이 권력자의 뒤에 숨어서 정부 인사와 예산에까지 개입한다면 그야말로 나라꼴이 우스워지는 것이다.

우리는 그 동안 대통령 측근들의 비리와 부정을 자주 보아왔다. 독재자라고 불린 대통령도 그랬고 민주화를 위해 헌신했다는 대통령도 마찬가지였다. 모두 실세를 눈감아주거나 이용하다 생긴 불상사들이다. 지도자들이 비선조직에 대한 유혹을 떨쳐버리지 않는 한 그런 일이 되풀이될 수 있다는 사실은 한국 정치의 비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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