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품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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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길주. 수필가

제주의 생활환경은 제주인의 삶의 품격을 좌우한다. 삶은 처한 환경의 영향을 받으며 번성하기도 하고, 쇠락하기도 한다. 맹자를 바르게 기르려고 사는 곳을 세 번이나 옮겼다는 ‘맹모삼천지교’ 이야기도 주거 환경의 선택이었다. 소음공해나 악취가 심한 장소에서의 삶은 상상만 하여도 머리가 아프고 속이 매스꺼워진다. 심리적, 정서적 고통이다. 신체적 건강이나 삶의 편의 또한 장소와 연관이 크다. 건물과 포장도로에 휘둘린 도시는 삶에 편리한 반면 숲이나 푸른 초원에 둘러싸인 시골에서의 삶은 건강에 좋다고 한다. 건강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시골의 삶을, 삶의 편의나 직장을 위해서는 도시의 삶을 선택한다. 불과 일이십년 전만 해도 제주의 주거환경은 도시나 시골이나 별 차이 없이 쾌적했다. 지금은 어떤가? 도 전역이 대도시를 방불케 하는 번잡한 주거환경이 되었다. 유입 인구의 증가와 관광객 때문이다.

오래된 옛집과 돌담, 거기에 기어오른 넝쿨과 이끼. 이제 그런 곳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있다. 바닷가나 산기슭, 계곡 근처마저 관광 시설들로 들어찼다. 제주 전체가 관광객을 위한 시설과 운반 차량들로 북새통이다. 거기서 쏟아내는 오·폐수나 쓰레기도 만만치 않다. 호젓한 주거환경은 그림의 떡이다. 인근 지역으로의 이동도 예삿일이 아니다. 길마다 차량들로 장사진이다. 한 시간이면 제주 전역 어디든지 오고갈 수 있었던 거리가 이제는 어림도 없다. 도로 여건은 그대로인데 차량들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니 빚어지는 현상이다.

매력(魅力)은 끌어당기는 그 무엇이다. 그것은 ‘저다움’에서 나온다. 본디부터 있어온 자연스러움이다. 그렇다면 제주의 ‘저다움’은 무엇일까? 청정 바다와 한라산을 배경으로 옹기종기 모여 사는 제주인의 독특한 삶이다. 육지와 쉽게 왕래할 수 없었던 자연환경 때문에 제주만의 고유한 문화를 유지해 왔던 게 ‘제주다움’이다. 그게 제주의 매력이며 품격이다. 이제 ‘제주다움’은 그 흔적마저 사라진다. 그 대신 본디 모습을 갈아엎고 회색지대를 넓히며 소비와 환락의 메카로 변모한다. 외래 자본은 부동산 가격을 거침없이 끌어올리고 서민들의 등댈 자리마저 집어삼킨다. 소비를 부추기는 사회는 결국 돈에 미친 삶을 조장한다. 과연 우리가 그리던 미래가 이런 모습일까?

관광 정책도 같은 맥락이다. 제주 전역이 관광객으로 넘쳐난다. 그 대부분이 유커(중국관광객)들이다. 그들을 들이기 위해 특혜성 수단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들 주머니에서 나오는 돈이 모두 제주에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들이 낸 돈 대부분은 중국 여행사나 항공사가 챙긴다. 그들의 쇼핑 마진까지 떼어간다. 결국 그들이 북 치고 장구 치며 잇속을 다 챙기는데 우리는 푼돈 이삭줍기나 하고 있는 꼴이다. 그 대가로 제주의 품격은 여지없이 구겨진다. 무질서에다 생활환경의 파괴는 물론 크루즈에서 토해내는 쓰레기까지. 우리 고유문화도 훼손된다. 정주민이나 관광객 모두 수난이다.

어느 경제학자는 싸구려 관광은 푼돈 몇 푼 떨어뜨리면서 그 지방의 질서, 환경, 문화마저 파괴한다고 혹평했다. 더구나 제주는 저가 관광에 무비자로 모시기까지 하고 있으니 무례한 행태에다 범죄까지 서슴지 않는다. 싸구려엔 싸구려가 따른다. 관광객의 머릿수를 헤아리는 박리다매(薄利多賣) 식 접근보다는 많이 쓰고 품위있게 즐기는 관광을 유도해야 한다. 그래야 정주민이나 머물다 가는 이들 모두 품격 높은 삶과 휴식을 취할 수 있다.

오늘의 삶의 품격을 떨어뜨리는 정책은 어떤 명분으로도 지속되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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