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소리
아름다운 소리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김익수 시인/수필가/아동문학가

가을이 깊어 감을 알리는 소리가 있다. ‘딱 딱 딱’이 소리가 아니다.


방망이가 교대로 내려칠 때 내는 소리엔 리듬이 실려 있다. ‘또드락 똑딱, 또드락 똑딱, 또드락 똑딱, 바로 이 소리다.


우리의 할머니에게서 어머니로 다시 어머니에게서 딸로 이어져온 아름다운 소리, 다듬이질 소리다.
듣기 좋고 기분 좋은 소리는 어떤 소리들이 있을까?


칭찬의 소리, 숲 속 새소리, 엄마가 불러주는 자장가 소리…. 그러면 듣기 싫고 기분 나쁜 소리는 어떤 소릴까? 화내는 소리, 잔소리, 천둥, 번개소리…. 이처럼 소리도 극과 극을 오간다. 그런데, 귀가 먹은 것이 아니라면, 요즘 세상에 들려오는 소리라는 게 모두가 시비다툼뿐인 소리인 것 같아 어느 누군들 마음이 편치 못하는 것 같다.


옷감을 빨래한 후 주름 펴는 다듬이 소리! 이 소리는 때로는 크게, 때로는 작게, 어느 때는 급하게, 어느 때는 완만하게 방망이로 두드려 빨래 주름을 편다. 할머니와 어머니가 마주 앉아 삶의 고단함과 한숨, 애환과 정겨움이 한데, 마루에 녹아들고, 어느새 다듬이 소리가 아기에겐 자장가로 들렸을까, 깊은 꿈나라 여행을 하고 있다.


예로부터 다듬이 소리는 아기울음소리, 글 읽는 소리와 함께 세 가지 기쁜 소리 삼희성 三喜聲으로 꼽혀왔다. 경제적, 사회적 불안감으로 결혼을 해도 아이를 낳지 않는 부부들이 늘어나면서, 저출산은 점점 심각해지는 현실이다. 그러니, 천진난만한 아기의 울음소리를 쉽게 들을 수 있겠는가. 또한, 책을 읽지 않고 있다는 것도 문제다. 아니, 읽지 않는 게 아니라 못 읽는 것이 더 바른 말일 것 같다. 인터넷의 정보바다에서 손쉽게 바라는 것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일까?


인류는 책을 발명한 이후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책에 대한 존중을 그친 적이 없다. 하지만, 현실은 그게 아니다.


‘뚝딱 뚝딱 뚝딱’돌아가다 세탁이 다 됐다고 ‘삐이익’거리는 소리, 어딘가 정감을 느끼기에는 역부족한 것 같다. 깊어가는 가을밤이면 어머니의 품이 그리워지고, 어머니의 품이 그리워질 땐 그리워지는 다듬이질 소리다.


소싯적에 다듬잇돌 위에서 발로 풀 바르고 말린 옷감을 밟아본 그 추억이 지울 수 없는 것은 여인들의 한과 정, 그리움과 기다림이 담겨있기에 그렇다.


그 시간들, 다지나갔다.


할머니에게서 어머니로 다시 어머니에게서 딸로 이어지는 정겨운 모습과 맑디맑고 경쾌한 소리. 그 아름다운 소리 하나가 맥이 끊긴 채 우리의 곁을 떠났다. 깊어가는 가을 밤, 그 달밤이 외롭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