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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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철 제주대 교수 중어중문학과/논설위원

매번 글 앞에 서면, 내 스스로가 밉다. 글을 통하여 글쓴이의 생각이 드러난다는데, 내가 지금까지 쓴 글들 중에는 누구의 미담을 쓴 것도, 희망을 이야기한 것도 없다. 오직 누구를 고발하고 질책하는 글만이 있었을 뿐이다.

이런 내가 싫어 글을 그만 쓸까도 수차례 생각해보았지만, 때가 되면 쓰고 또 쓴다. 그리고 오늘도 어김없이 내 입을 더럽혀가며 말 같지 않은 말로 지면을 채우고 있다. 아무리 써대도 반향은 없다. 그래도 쓰고 또 쓰면 부끄러운 자들이 자제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저들은 부끄러운 것조차도 모르는 것 같다.

어처구니가 없다. 주위에 거짓말하는 자, 남의 실적 도적질하는 자, 남의 여자를 탐하는 자들로 득실거린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요지경속인 줄 몰랐다.

그저 어안이 벙벙하여 할 말이 없다. 도대체 비리의 끝은 어디인가? 말을 하면 울분이요, 돌아서면 남는 것은 무력감뿐이다.

모든 것은 정직하게 있는 그대로 공개하면 그만인 것을, 저들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약속과 질서에 따라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고, 오직 속임수와 작당으로 이익을 취하기에 혈안이 되어 살아가며, 그렇게 한 자들만이 앞자리에 서서 군림하고, 터무니없이 해 먹을 수 있다.

자신에게 이익 되는 일 앞에서는 국가도 형제도 그밖에 그 무엇도 없는데 의리나 자존심 따위가 있겠는가? 오직 권모술수만 난무한다. 우연히 앞선 자는 하수인들을 규합하고, 하수인들은 그를 모시고 그의 입만 쳐다보니, 하수인에게는 입이 있어도 말하는 입은 없고, 게걸스럽게 먹는 입만 있을 뿐이다.

온 나라가 여인의 손아귀에 놀아났다. 그녀들에게는 나라가 거대한 놀이터였던 모양이다. 우리 국민에게 운이 없어 저런 자가 주어진 것인가? 아니면 우리 스스로가 자초한 일인가? 복(福)도 스스로가 만든다. 사람도 잘 보고 자리에 앉혀야지….

저들이 참 나쁜 사람들이라고요? 그렇다고 지상에 오르내리는 다른 사람들 중에는 정상적인 사람이 있었던가요? 지위의 높낮이가 있을 뿐 한결같이 편법으로 자리에 오른 사람들뿐이다. 의혹의 중심에서 빠져나오기에 혈안이 되고, 자기는 저들과 다르다고 한결같이 욕을 해대지만, 정말 그들의 말처럼 떳떳할까?

사람은 누구나 좀 더 많은 것을 가지고자 하고, 좀 더 높은 자리에 오르고자 한다. 너도 그러하고 나도 그러하니 많은 것을 갖고자 하고 높은 자리에 오르고자 하는 것을 누구라고 비난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갖고자 한다면 노력하여 당당하게 가져야 할 것을 능력에 맞지 않는 것을 무모하게 가지려 하고, 가지려 한다고 들어주고, 비리인 줄 알면서도 빌붙어 한 자리 얻어 보겠다고 눈을 감거나 심지어는 열심히 심부름까지 하는 등 저토록 무모한 자라야 살아남는 사회라면 이런 판국에 무슨 말을 한들 소용이 있겠는가? 지금 생각해 보니 그 때 그 사람은 바른 말을 했다는 이유로 뒤에 숨으신 저 높은 곳의 신께서 자르라고 시켰던 모양이다. 세상이 이러하니 입을 다물고 눈치를 살폈어야 살아남았을 것을 건방지게 나섰으니 잘렸던 것이다.

저들과 섞이지 못하여 권력의 중심에서 물러난 개·돼지급 못난이들도 아직 할 일이 있다. 공직에서, 학교에서, 회사에서 각자가 겪은 각자의 세계를 하나도 빠짐없이 기억해 두었다가 언젠가는 반드시 온 천하의 사람들에게 진실을 알려야 한다. 그것이 이 사회에 봉사하는 마지막 길일 수도 있다.

나도 아직 할 일이 있다. 내가 겪은 이 사회의 단면을 빠짐없이 기억해 두었다가 시나리오라도 써서 극으로 만들어 TV로 방영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 오직 연구하여 모두의 귀감이 되는 교수들도, 깜냥도 안 되면서 권모술수로 자리에 앉은 자도, 돈과 권력만을 좇아 또 다른 최순실을 찾아 헤매는 교수들도, 있는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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