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향지시등 유감
방향지시등 유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김성원. 제주국제대 교양학부 교수

학생으로부터 자격시험 기출문제에 대한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필자와는 관련성이 없는 내용이었지만 질문 받은 몇 개의 문제를 살펴보면서 학생의 의문점을 쉽게 알 수 있었다.

한 개의 문제에 다섯 개의 보기로 구성되어 있었다. 문제에서 주어진 조건들이 보기와 관련이 없는, 불필요한 조건들을 제시함으로써 문제를 접하는 사람들에게 혼란을 줄 수 있는 문제였기 때문이었다.

결국 불필요한 조건이 제시된 이유에 대해서는 설명할 수 없었고, 국가자격시험이 난센스 퀴즈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돌아가는 학생의 뒷모습이 씁쓸하게 느껴진 적이 있었다.

출제자의 질문은 명쾌해야 한다. 출제자가 요구하는 내용을 수험생들이 정확히 파악할 수 있도록 간단 명료하게 출제되어야 한다.

이것은 출제자의 전문성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방향성이 부족한 것이다.

최근, 제주도는 인구 유입과 관광객의 증가로 제주시내 교통은 서울의 교통 환경과 거의 비슷하게 되어 버렸다.

제주시내에서 약속장소에 도착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삼십분이면 가능한 일이었지만 이제는 돌아오지 않을 과거의 일이 되어버렸다. 이와 같이 복잡한 교통 환경에서는 운전자들이 서로 양보하고 배려할 수 있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더욱 각박해진 것 같다.

특히, 방향지시등을 사용하여 자기 차량이 진행할 방향을 미리 상대방에게 명쾌하게 알려 주어야 하는 것이 상대방에 대한 배려이고 소통이다.

먼 거리에서부터 자기가 가는 방향을 방향지시등으로 시원하게 알려주는 운전자들을 만났을 때는 마음이 상쾌해 진다.

그러나 방향지시등을 사용하지 않고 제 멋대로 운전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남을 속이고 도망가는 사람처럼 비겁하고 추해 보인다.

‘음식이 맛있는 것 같아요’, ‘행복한 것 같아요’등과 같은 애매모호한 언어도 별로 예뻐 보이지 않는다.

원숭이를 생포하는 사람들은 욕심 많은 원숭이의 심리를 이용한다고 한다.

가죽자루에 과일들을 넣고 원숭이의 손바닥이 들어갈 만큼의 구멍을 뚫어 나무에 고정 시켜두면 자루 속의 과일을 잡은 원숭이의 주먹이 자루에서 빠져 나올 수 없다는 점을 이용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그물을 가지고 다가오는 데에도 발만 동동 구를 뿐, 욕심 많은 원숭이는 과일을 잡은 주먹을 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스의 철학자 디오게네스가 대낮에 횃불을 들고 거리를 활보하고 있을 때, 사람들이 그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그의 대답은 ‘세상이 나쁜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올바른 사람을 찾으러 다니고 있다’고 했다.

최근 나라의 분위기가 너무 어수선 하다. 이 모든 것들은 방향성을 잃어버린 그릇된 사고에서 비롯된 것이다.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최근, 많은 국민들이 횃불대신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섰다.

모든 문제의 해결은 용감한 판단아래 시원하게 방향을 제시하는 것으로 시작되어야 한다.

엉뚱한 조건 제시로 문제를 출제하거나, 방향지시등도 없이 모호한 질주가 되어서는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쉽지는 않겠지만 과감하게 과일을 포기하고 손바닥을 펼 수 있는 용감한 방향 선택이 조금이나마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