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문화예술제와 바르셀로나 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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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세훈. 홍보대행사 컴101 이사/전 중앙일보 기자

10여 년 전 스페인의 바르셀로나에서 10일 동안 여행한 적이 있습니다. 9월 중순이었는데 마침 ‘메르쎄’라는 축제가 열렸습니다. 축제 기간에는 행사가 열리는 람블라스 거리가 인파로 송곳 하나 꽂을 자리가 없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런 축제를 구경할 수 있으니 행운이었습니다.

처음엔 광고성 문구라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보니 그 말들이 거짓이 아니었습니다. 특히 각 마을이 특화된 장기를 선보이며 행진하는 모습을 보고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거인 마을, 삐에로 복장, 악대의 행진 등 다양하고 섬세했지만 그 중 저의 눈길을 끄는 것은 두 가지였습니다.

한 마을은 인간탑 쌓기 놀이를 선보였습니다. 높이 쌓을수록 높은 점수를 주는데, 당시 출전한 마을은 7층 높이까지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선수들의 구성이 감동이었습니다. 3~4살의 아이부터 60세 후반까지 두 세대나 잇는 자리였습니다. 참가한 다른 마을도 선수의 나이 구성은 마찬가지라고 했습니다. 맨 위층일수록 아이가 올라갑니다. 허리에 맨 줄과 어깨를 밟고서 올라가고 내려옵니다. 고도의 균형감각과 상당한 체력, 담력, 기술 그리고 무엇보다 서로에 대한 신뢰가 바탕이 돼야 합니다. 한 마을에서 여러 세대가 서로 믿음을 키우고 즐거움을 나누는 시간을 함께했을 것을 생각하니 공동체의 모범적인 삶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뿌듯했습니다. 이런 시간을 보낸 어린이들이 할아버지를 믿지 않을 이유가 없을 것이고, 자신의 후배들에게 믿음을 전수하지 않을 이유가 없을 것 같았습니다.

또 한가지는 폭죽놀이였습니다. 중세 복장을 한 마을이었는데, 구경꾼들에게 폭죽으로 놀라게 하기도 하고 친숙함을 표하기도 했습니다. 구경꾼 중에는 휠체어를 탄 아이들도 상당수 눈에 띄었습니다. 보호자들이 일부러 환자를 즐겁게 해주려고 데리고 나왔다고 했습니다. 폭죽은 전혀 위험하지 않은 제품이어서 뜨거운 불꽃도 일지 않고 더구나 화재의 위험도 전혀 없다는 설명이었습니다.

화면이 바뀌어 11월 5일 오후 3시, 대정읍 시장통으로 오면 생각이 많아집니다. 대정고을 추사문화 예술제는 5·6일 양일 열렸습니다. 5일은 예술제를 알리는 거리 행진이 있었고, 본 행사는 6일 열렸습니다. 본 행사는 유배 행렬 재현, 북 공연, 전통 혼례, 가야금, 민요, 서예대전, 물허벅춤, 창작 동요 발표, 가수, 각설이 공연 등 볼거리가 많고 재미 있었습니다. 참가 부스도 다양하고 참여자가 많았습니다. 더욱이 날씨가 화창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방문해 하루를 즐겼습니다. 특히 가훈 써주기 부스는 대기 손님이 많았고 준비한 종이를 다 소진하는 인기를 누렸습니다. 경품 추첨도 순조로웠고, 상품 구성도 실용적인 부분까지 꼼꼼하게 신경 쓴 흔적이 역력했습니다. 그렇지만 5일의 거리 행진은 가슴 아픈 기억으로 남습니다. 대정 파출소에서 대정읍 사무소까지 이어진 행진은 대부분 나이 든 할아버지들이 운동 삼는 자리인 것처럼 느꼈습니다. 호응하는 읍민들은 보이지 않고 행진자들도 무표정했습니다. 조금이나마 신나 보였던 사람들은 행진하는 30여 분 동안 흥을 돋워야 했던 사물놀이패였습니다. 하지만 목표 지점인 대정읍 사무소에서 사물놀이패가 모자를 벗고 땀을 닦는 순간 코끝이 찡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모두 나이가 들 대로 드신 분들이었습니다. 젊은 분을 애타게 찾아봤지만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이유야 많겠지요. 상황도 많이 다를 것입니다. 하지만 공동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어떤 것인지는 분명히 알 것 같습니다. 문제를 안다면 서로 해결하는 지혜를 짜야 할 것입니다. 나이 드신 대정고을 어르신들께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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