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꼴통도 깨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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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동의어처럼 헷갈리는 두 말.

‘수구(守舊)’는 옛것을 지키고자 하는 성향이고, ‘보수(保守)’는 변화하지 않으려는 그에 대한 비 호감의 경향이다.

같이 쓰이기도 하나 엄격히 따지면 보수가 수구보다 의미가 넓다. 따라붙는 ‘꼴통’은 머리 나쁜 사람을 속되게 일컫는 말이다.

그러니까 ‘보수 꼴통’이라 하면 무작정 보수에 매몰된 사람, 그래서 합리적 판단을 하려 않고 과거라는 환상에서 깨어나지 못한 사람이다.

보수 꼴통의 대척점에 합리적 보수가 있다.

보수 꼴통에게는 여러 가지 특징이 있다.

그중 몇 가지를 추리면, ‘박정희 시대를 살아왔다, 눈부신 경제 발전을 보며 살아왔기에 일하면 잘 살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 자신은 가족을 위해 희생해 왔다고 자부한다, 정부에 대한 비난은 받아들일 수 있으나 대통령에 대한 비난은 종북으로 간주한다, 자기 고집에 빠져 남의 의견을 듣지 않는 어르신네들’….

이들 중, ‘대통령에 대한 비난은 종북으로 간주한다’ 말고는 상당 부분 내게도 해당될 것 같다. 이쯤에서 분명해진 게 있다. 나도 보수 꼴통이란 사실이다.

나는 특히 박정희 대통령에 대해선 호감에 훨씬 더한 감정, 그러니까 경외심을 갖고 있다.

그는 못 먹고 못 입던 이 나라 백성들에게 괄목할 만한 변화의 시대를 열었다.

그것은 상상 못하던 풍요의 삶이다. 서속밥도 없어 못 먹다 기름 흐르는 쌀밥을 먹게 했고, 초가를 슬레이트지붕으로 개량했으며, 헐벗은 몸이 따습게 옷을 입도록 했다.

산업화의 근간을 이끈 그의 지도력은 건국 이래 가장 초월적이었다. 뇌리에 아우라로 눈부시게 각인됐다. 개발독재라는 공과(功過)에도 불구하고 유독 그에 대해선 관대하다. 그러니 나는 보수 꼴통 외곬인 게 맞다.

최순실 국정농단 파장으로 나라가 회오리바람에 휩쓸렸다.

성난 민심의 바다는 도도하다. 그것은 민중이 밝힌 빛이요 민중이 내어지르는 함성이다. 분노이고 절규며 갈망의 언어다. 망망대해 촛불의 파도 속으로 표류하며 우리가 살아있음을 느낀다.

이제 거짓의 시간은 멈춰야 한다. 너나없이 보수 꼴통들도 깨어났다.

리더십이 무너졌다. 국정이 동력을 잃고 파국으로 치닫는다.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시계 제로의 형국이다.

정치권에선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고, 국회가 추천하는 총리 중심의 거국내각을 구성한다 하고, 대통령의 하야를 외치기도 한다.

청와대는 국민의 목소리를 듣고 상황의 엄중함을 깊이 인식하고 있으며 책임을 다하고 국정 정상화를 고심 중이라 한다.

하야의 촛불을 일단 외면하면서 작금의 혼미 상태가 장기화할 조짐이다. 이러다가는 대한민국이 한바다 위에서 거센 풍랑에 떠내려갈는지도 모른다. 대승적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위기 국면에서 역할이 커진 계층이 책임 있고 성숙한 정치력을 발휘할 호기(好機)인가.

중요한 것은 국민의 신뢰를 얻고 국정을 담당할 수 있는 수권능력을 인정받는 일이다.

혹여 벌써 무엇이 된 것처럼 행세하거나, 개인의 정치적 손익계산에 골몰한 나머지 얄팍한 셈법에 넋을 놓는 자가 있다면 용서 받지 못한다. 겸허해야 한다.

대통령과 여당의 난맥상에 의지한 반사효과는 생명이 그리 길지 않다.

이 나라를 건질 난세의 영웅은 없는가.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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