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나기 걱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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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희. 춘강장애인근로센터 사무국장/수필가

춥다. 출근길 겨울 코트를 꺼내 입고 거울 앞에 선 내 모습이 아직은 낯선 11월이건만, 사무실 창문을 꽁꽁 닫아 놓고도 차가운 아침공기에 난방기가 아쉽다. 겨울이 곁으로 바싹 다가온 게다.

점심시간, 따스한 차 한 잔에 동료들이 둘러앉았다. 어머님이 춥다 하셔서 주말에 전기장판을 꺼냈다는 말에 전기요금 이야기가 자연스레 나온다. 몇 해전만해도 기름 값 무서워 전기장판 하나에 온 가족이 올라 앉아 겨울난다는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올해는 전기요금이 화두가 되었다.

보조기 없이는 설 수 없는 지체장애 가장의 이야기다. 8월 전기요금이 42만원이 나왔단다.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금액이다. “장애인 할인 받잖아요” 월정액으로 8000원 할인이란다. 누진세 폭격을 제대로 받은 것이다.

사단의 주범은 에너지 효율 스티커가 지워진 지 오래된 에어컨이리라. 거기에 검침일이 22일로 가장 더운 7월 22일부터 8월 21일까지 사용량에 대한 누진이 적용되면서 엎친 데 덮쳐 요금 폭탄이 된 것이다.

“없는 살림에 좀 아끼지”라는 조언은 억울하다. 민소매에 반바지를 입고도 덥다 난리쳤던 올여름. 걷기 위해서는 보조기를 착용해야 하기에 속 양말 세 켤레는 기본이고, 두꺼운 바지 입은 채 생업의 현장에서 하루 종일 부대끼며 버텨낸 것 이다.

늦은 저녁, 집으로 돌아와 보조기를 벗으면 속살이 벌겋게 달아올라 살갗이 까지거나 염증이 생기는 게 다반사란다. 그러니 한두 시간이라도 식혀 주어야 한단다. 작은 뾰루지 하나에도 걸음이 비틀거리고 금세 허리가 아파오는 여린 몸이니 어쩌랴 내일을 위해 우선은 성난 몸을 냉기로 달래주어야 했으리라.

이리도 요금이 많이 나올 줄은 몰랐단다. 에어컨이 낡아 에너지 소비가 심한 걸 알면서도 바꿀 수 없는 현실에 눈앞이 더욱 캄캄하다며 한숨이다.

냉·난방기는 장애인 등 노약자에게는 선택사양이 아닌 필수품이다. 적절한 체온 유지는 그들의 불편한 몸을 움직일 수 있게 하는 최소한의 안전망이다. 올 여름 제주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서는 소외계층에 여름나기 용품을 지원하였다. 좁은 방, 낮은 천정, 작은 창, 소외계층 가정 대부분의 형편이다. 넓은 거실에서 시원하게 열린 베란다 창으로 바람이 들어오는 우리네 집과 같이 생각해서는 안 되는 환경이다.

선풍기와 이불, 냉장고 등 지원된 여름 용품은 편안한 삶, 안락한 삶을 보장해 주는 삶의 질을 높여 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이웃이 폭염에 살아낼 수 있도록 최소한의 환경을 꾸려 주는 일이었다는 점을 환기하여야 한다.

오늘 저녁, 우리는 두꺼운 이불을 자연스레 끌어 올릴 것이다. 우리 주변의 힘든 이웃들에게도 두꺼운 이불이 있기를 소망해 본다. 그들이 춥다 느낄 때, 전기장판이 생각날 때 그 곁에 난방용품이 있었으면 좋겠다.

추워지기 전에 우리는 관심을 쏟아야 한다. 일상의 중심이 정치권 이야기로 소용돌이치고 있지만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등한시해서는 안 될 것이다. 뉴스에 정치권 이야기가 아닌 혹한으로 어려움을 겪는 이웃들의 슬픈 이야기가 실리지 않도록 서둘러야 한다.

그리고 국민들의 온정이 모여 지원된 난방 기구들이 제 역할을 다 할 수 있도록 전기요금 지원 방식이 개선되길 기대해 본다.

촛불 켜진 광장에도 냉기가 찾아 들었을 텐데 어쩌면 좋으려나. 어우러진 어깨사이로, 철퍼덕 주저앉은 길바닥 위로 피어나는 희망의 촛불이 추위를 막아주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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