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 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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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희. 수필가

태풍 차바가 휩쓸고 간 어수선한 뒤였다. 곳곳에 흉물스럽게 널브러진 잔해가 어지럽게 널려 있어 심난하고 우울한 나날이었다.

집안의 부음으로 서둘러 서울 길에 나서던 길이다.

제주국제공항은 그야말로 난장이었다. 태풍으로 결항되거나 지연되는 바람에 대기 승객들이 몰리면서 북새통이다.

탑승구 대기실에 들어간 순간, 과연 여기가 국제공항이라 할 수 있을까 싶었다.

출발 시간대를 조절해 검색대를 통과시켰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바닥에 그대로 앉아 있는 승객들은 피곤에 절었다.

임시 간이의자나 깔개라도 살펴 주었으면 하는, 공항이용료도 적잖게 지불하는데 지친 여행객들에게 관계기관의 배려가 아쉬웠다.

더 속상했던 것은 화장실이다. 비데까지 갖춘 시설은 최고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눈앞의 뚜껑 없는 쓰레기통은 오물 묻은 쓰레기로 넘쳤다.

국제공항이 이 지경이라니. 왜 쓰레기통을 눈높이에 두어야 하는지. 코를 막고 서둘러 돌아서는데 구역질이 나올 만큼 비위가 상했다.

두루마리 화장지는 물에 녹게끔 만들었다. 사용 후 변기에 넣고 물을 내리면 깔끔하게 처리가 되는데, 유독 우리 화장실 문화는 아직도 따로 버리는 습관에 머물러 있다.

여러 사람이 사용한 휴지는 비위생적으로 전염병을 일으킬 수 있다. 시설이 아무리 좋다 해도 의미가 없다.

화장실 사용 문화는 그 나라 국민의 품격을 짐작케 한다. 외국 여행 시 비행기에서 내리면 화장실부터 찾게 된다.

선진국이나 후진국 불문하고 거기서부터 그곳 문화 수준을 가늠해 보곤 한다.

일본 여행길에서다. 점심을 먹으러 간 식당 주인이 굳은 표정으로 먼저 가이드를 불렀다.

화장실 이용 시 반드시 휴지는 변기에 넣고 물을 내리라는 부탁을 했단다. 관광객들이 어떻게 했기에….

몹시 불쾌하고 자존심이 상했다. 숙소에는 휴지는 변기에, 여성용품은 비닐에 싸 버리게끔 된 통, 일반 쓰레기통이 나란히 놓여 있고 안내 문구까지 붙어있었다.

이렇게 철저한 분리생활 앞에, 낮에 일이 떠올라 머리카락 한 올 흘리고 싶지 않았다. 오기가 생겼다 할지.

상·하수도 시설을 만들고 배설물을 따로 흘려보내는 건 새로운 문명의 시작이었다. 곧 질병 없는 사회의 기초가 됐다.

아무리 좋은 시설이라도 이용자가 그 수준을 따라가지 못하면 소용없다. 아름다운 화장실에 선정된 곳을 보면 비데에 온수까지. 세계 어느 곳에 이처럼 친절한 화장실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직도 화장지를 변기에 버리면 막힌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제라도 사회적인 캠페인과 함께 학교에서도 예절 교육을 시켰으면 좋지 않을까.

어릴 적부터 실천하고 행동하는 버릇이 중요하다. 화장실은 보이지 않는 얼굴이다.

공공시설은 물론, 특히 관광지에 어떻게 구분해 버릴 것인지 하는 안내 글도 부착했으면 한다.

더러운 화장실은 외국인들에게 보여선 안 될 부끄러운 자화상인데다, 치우는 사람의 어려움도 헤아릴 수 있어야 할 것 아닌가.

볼일을 보고 나서 뒤를 살피는 것도 예의다. 뒤처리를 말끔하게 했는지. 다음 이용자를 위한 배려다.

문을 열었을 때 그대로 닫고 돌아섰던 불쾌했던 경험들을 누구나 갖고 있을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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