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고내오름-펼쳐진 절경에 산사의 고즈넉함도
(37)고내오름-펼쳐진 절경에 산사의 고즈넉함도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고려 공민왕 때부터 봉수대 설치
고래등 모양 봉우리 5개 뻗쳐
스님들 수양하던 고릉굴도 볼만
▲ 제주시 애월읍 고내리에 위치한 고내오름 정상에 설치된 오름 전망대, 크고 작은 5개의 봉우리가 고래 등허리처럼 뻗쳐 있고, 고려시대부터 봉수대가 설치돼 전쟁 등 위급시 연락망 역할을 했었다.

고내봉은 예로부터 고내오름이라 부르고, 고내악으로 표기했다.

 

여기서 고내는 고지대(高)+속(內)에 형성된 마을을 뜻한다.

 

그런데 조선시대 당시 오름 주봉에다가 봉수대를 설치하면서 그 봉수를 고내봉이라고 했다.

 

이후 봉수제는 폐지됐지만, 그 이름이 그대로 전해져 오늘날에도 많은 이들로부터 고내봉이라 불리운다.

 

제주시 애월읍 고내리에 있는 고내봉은 해발 175.3m, 높이 135m의 기생화산이다. 주봉인 북쪽의 망오름과 서쪽의 방에오름, 남서쪽 넙은오름, 남쪽 상뒷오름, 남동쪽의 진오름 등 크고 작은 5개의 봉우리는 상가리와 하가리에 걸쳐 뻗쳐 있다.

 

하가리 쪽 동사면과 고내리 쪽인 북사면은 비교적 굴곡이 단조로운 편이나 상가리 쪽 남사면에서 북서사면까지는 들쭉날쭉 구릉과 골이 많다.

 

고내리가 선정한 고내 8경 중 제1경인 경배목적(鯨背牧笛)에선 이 오름의 모양새를 고래의 등허리에 빗댔다.

 

오름에 오르려면 우선 일주도로(1132번)변에 위치한 애월고등학교 입구로 가야 한다. 이후 제주시 방면 250m 지점으로 이동하면 보광사라는 절로 통하는 길이 하나 나오는데 길을 따라 150m를 더 가면 이곳이 바로 오름 입구다.

 

하지만 고내봉은 자기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다. 오름 역시 빽빽하고 울창한 소나무로 만든 옷을 꽁꽁 싸맨 것처럼 보인다. 직접 오른 자에게만 매력을 발산하겠단 것인가. 아주 밀당(밀고 당기기)의 귀재다.

 

산책로가 2007년 재정비돼 오르내리는 데는 크게 불편하지 않았다. 다만 산책로가 조성되지 않은 흙길은 비교적 미끄러워 오를 때 주의해야 한다.

 

낮은 오름이라 무시해서도 안 된다. 등산로가 가라파서 중턱 이후에서는 ‘헉헉’거리지 않을 수 없다.

 

▲ 고내오름 표지석.

이렇게 30여 분 걸으면 어느새 탁 트인 정상과 마주하는데 전망대에 오르면 제주 서부를 한 눈에 담기에 이 만한 장소가 없다. 송골송골 맺혀 있던 땀은 바닷바람이 식혀준다.

 

이동통신중계기가 세워진 정상에서는 코앞으로 에메랄드 빛 바다와 함께 애월항이 보이고, 저 멀리 우뚝 솟은 비양도도 보인다.

 

어느 방향이든 시선의 움직임에 따라 달라지는 360도 파노라마 뷰는 그야말로 압권이다.

 

또 정상에서는 고려 공민왕(1352년) 때 설치된 고내봉수대의 흔적도 볼 수 있다. 이 봉수대는 애월진에 소속돼 동쪽으로는 수산봉의 수산봉수, 서쪽으로는 어도봉의 어도봉수와 통신했다.

 

고내봉 동북쪽에는 ‘고릉굴’이라 불리는 굴이 있다. 고내 8경 중 제2경 고릉유사(高陵遊寺)에 선정된 이 동굴은 예로부터 스님들이 암자를 만들어 수행했으며, 문인들도 찾아와 글을 지은 장소로도 사용되곤 했다.

 

고내봉의 또 다른 매력은 오름 중턱에 있는 보광사까지 차를 끌고 단번에 올라갈 수 있다는 것이다. 연로하신 부모님을 모시거나, 오래 걷기 힘들어하는 사람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이 같이 고내봉은 녹색의 싱그런 푸르름과 뛰어난 해안 경관의 조화로 감출 수 없는 신비감을 자아낸다. 코 앞으로 다가 온 겨울. 집 안에만 웅크려 있지 말고 밖으로 나와 초겨울의 정취를 느껴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하르방당과 할망당

 

수백년 전 한 노부부가 살았다. 어느날 할머니는 당에 갈 재물을 준비하고 나서 잠시 볼일을 보기 위해 외출했다.

 

그 틈에 할아버지는 당에 가져갈 음식을 모두 먹어버렸고, 귀가한 할머니는 할아버지에게 “그 벌로 얼굴에 바가지만한 종기나 돋아 버렸으면”하고 말했다.

 

할머니의 험담대로 볼기에 커다란 종기가 난 할아버지는 화가 나 칼을 들고 당을 찾아갔다.

 

이후 당 안에 들어서 칼로 자신의 종기를 찔러 나온 고름을 제단에 뿌리며 “내 살꺼정 먹고 잘 살아 보소”란 말을 남기고 자결했다.

 

이 소식을 들은 할머니도 “할아버지 없이 어찌 사느냐”며 목숨을 끊었다.

 

이런 일이 있고 난 후부터 할아버지가 죽은 곳을 하르방당, 할머니가 죽은 곳을 할망당으로 불리며 신성하게 여겨졌다.

 

하르방당은 고내봉 서쪽 비탈에, 할망당은 소길리에 있는 400년 이상 된 커다란 팽나무 앞에 각각 위치해 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